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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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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리그 클래식/2016시즌 . . . . 69회 일치
         [[수원 삼성 블루윙스]]
         [[수원 FC]]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2015시즌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의 승자자격으로 승격
         || 2 || 2016.03.12 || 성남 FC vs 수원 삼성 || 2 : 0 ||
         || 4 || 2016.03.13 || 전남 드래곤즈 vs 수원 FC || 0 : 0 ||
         || 7 || 2016.03.19 || 수원 FC vs 성남 FC || 1 : 1 ||
         || 12 || 2016.03.20 || 수원 삼성 vs 전남 드래곤즈 || 2 : 2 ||
         || 13 || 2016.04.02 || 수원 삼성 vs 상주 상무 || 2 : 1 ||
         || 17 || 2016.04.03 || 수원 FC vs 광주 FC || 2 : 1 ||
         || 19 || 2016.04.09 || 상주 상무 vs 수원 FC || 1 : 1 ||
         || 24 || 2016.04.10 || 제주 Utd vs 수원 삼성 || 2 : 2 ||
         || 25 || 2016.04.13 || 수원 삼성 vs 포항 스틸러스 || 1 : 1 ||
         || 30 || 2016.04.13 || 수원 FC vs 울산 현대 || 1 : 1 ||
         || 31 || 2016.04.16 || 인천 Utd vs 수원 삼성 || 1 : 1 ||
         || 33 || 2016.04.16 || FC 서울 vs 수원 FC || 3 : 0 ||
         || 38 || 2016.04.23 || 수원 FC vs 인천 Utd || 0 : 0 ||
         || 40 || 2016.04.24 || 광주 FC vs 수원 삼성 || 1 : 1 ||
         || 43 || 2016.04.30 || 수원 삼성 vs FC 서울 || 1 : 1 ||
         || 45 || 2016.04.30 || 전북 현대 vs 수원 FC || 3 : 1 ||
         || 52 || 2016.05.07 || 수원 FC vs 제주 Utd || 2 : 5 ||
         || 54 || 2016.05.08 || 수원 삼성 vs 전북 현대 || 2 : 3 ||
  • 고유민 . . . . 33회 일치
         ||||<#009639> {{{#ffffff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No.7 }}} ||
         || '''프로 입단''' || 2013-2014 V리그 1라운드 4순위(현대건설) ||
         || '''소속팀''' ||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2013~) ||
         ||||||||||||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현대건설]] 등번호 7번(2015~2016)''' ||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소속의 레프트.
         이 대회의 활약으로 [[황현주(배구)|황현주]] 전 현대건설 감독이 주목하게 되고 1라운드에서 지명된다. 이때 배구팬들은 키 큰 [[황윤정]][* 기업은행 센터였으나 현재 실업 수원시청 소속.]이나 리시브 되는 최지유[* 기업은행에 2라운드 지명되었으나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했다.]나 뽑지, 리시브를 프로에서 배워야할 선수를 왜 1라운드에서 뽑을 필요가 있는가? 라며 황현주 전 감독을 깠다.
         제주도 전지훈련에서 오래달리기 3등을 하는 등 열심히 노력했으나 결국 선발은 되지 못하고 [[김주하]]-[[정미선(배구선수)|정미선]]-[[한유미]]-김진희에 이은 5옵션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꽤 낙심했으나 간간히 전위에 정미선[* 키는 현대건설 레프트 중에 제일 크지만 키에 비해 점프력이 좋질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신에 수비나 공격이 밸런스 하니까. 이런 레프트가 전체 5순위까지 밀려?--]이 올때 원포인트 블로커로 기용되거나 한유미의 리시브가 불안할때 대체요원으로 기용되었다.
         2차전 흥국생명전에서 정미선이 부상당하고 다음날 도로공사전 준결승 경기에서 김연견이 부상당하자 예상하지도 못한 리베로를 보게 되었다. 이 경기는 난리도 아니였는데 리베로가 없자 2세트는 없이 치루고 3세트는 코치가 딱 5분간 리베로 강습을 한 다음에 내보냈다. '''사람들은 리시브도 안 좋은애가 얼마나 버티겠냐'''며 수비붕괴로 인한 현대건설의 패배를 예상했으나 목적타 집중을 --한유미와 김주하가 같이 온몸으로 받으면서-- 어찌어찌 버텨냈고 4세트에는 리시브 정확을 6번[* 이날 총 8번의 리시브 정확판정을 받았는데 4세트에 6개를 받았다.] 얻어내기 시작하더니 5세트에서는 장기인 디그 능력을 십분 살리며 팀을 결승으로 이끈 주역중 하나가 되었다. 5세트의 퍼포먼스는 웬만한 백업 리베로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컵대회 현대건설의 가장 큰 수확- 새로운 공격형 레프트의 발견'''
         시즌 대회 전 [[http://sports.donga.com/3/all/20150708/72365102/3| 프리뷰 기사]]에서 현대건설은 '부상병동'이라고 일컬어지며 제 실력 발휘가 어려울 것이라 예상되었다.[* 레프트 포지션만 따져도 작년 주전 레프트 [[김주하]]는 2015년 4월 발목 수술후 재활 중, 재작년 주전 레프트 정미선은 작년 컵대회 때 당한 복합십자인대 부상으로 작년 시즌을 통으로 쉰 후에 재활 중, 베테랑 한유미는 컵대회 직전까지 출전을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고유민도 왼쪽 무릎이 좋지 않아 재활 중이었다. 라이트 포지션인 [[황연주]]도 고질적인 무릎은 물론이고 허벅지 근육 파열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세터 [[이다영]]도 허리 부상의 여파에서 막 벗어난 상태였다.] 도로공사와의 경기 직전 라인업[* 센터: 양효진-김세영 라이트: 황연주 세터: 염혜선 레프트: 고유민-정미선 리베로: 김연견.]이 발표되자 배구갤러리, 경기중계댓글 할 거 없이 '''"도대체 팀 상황이 얼마나 막장이면 작년에 잘 보이지도 않던 애 둘을 스타팅으로 넣냐"'''며 비웃음과 조롱이 넘쳐났고 현대건설 팬들은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도공]]의 새 감독 [[이호(배구선수)|이호]]의 첫 승리 상대가 될 생각에 답답해했다.
         도로공사 감독 이호는 주포로 예상 되었던 황연주와 양효진(김세영)의 공격을 임명옥[* 전 인삼공사 주전 리베로. 국가대표 리베로 김해란과의 1:1 트레이드로 데려왔다.]을 앞세워 그런대로 방어[* 황연주-공격점유율 30.29% 성공률 27.91%, 양효진- 공격점유율 17.61% 성공률 32%]했지만 계산밖이었던 고유민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1세트에서는 블로커가 아얘 붙지 않거나 있어도 하나만 있는 상태가 많았다.] 이날 공격점유율 20.42% (팀내 2위), 성공률 '''41.38%'(팀내 1위)''', 13득점(팀내 2위), 서브에이스 1개--근데 2개 날렸다--,[* 그것도 리시브의 달인이라고 평가 받는 도공 리베로 임명옥을 상대로 기록하였다.] 9디그를 기록하며 자신의 기량향상을 제대로 선보였다. 황연주가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고 컵대회 초반 양효진이 감을 못잡은 상태에서 현대건설의 주요한 공격옵션으로 자리잡았다. 낮고 빠르게 세터가 쏘아주는 C토스를 바탕으로 힘으로 몰아붙이거나 블로커가 붙었을 경우 피해서 코트 이곳 저곳 꽂아 넣는 정확성에 다시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리시브 성공률 9%는 옥의 티.
         2차전 인삼공사 전에서도 선발 출장했다. 이날도 현대건설은 기복이 있는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컵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황연주-양효진-고유민의 삼각편대를 다시 한번 보여주면서 승리했다. --그것보다도 [[이다영]]이 잠시나마 경기감각을 되찾고, [[한유미]]의 정밀서브, [[염혜선]]의 닭장거부서브가 인상적인 경기였지만-- 13득점(팀내 2위, 12공격득점), 공격점유율 17.52%(팀내 3위), 공격성공률 '''50%(팀내 1위)''' 백어택(후위공격) 1[* 프로데뷔 첫 백어택], 1블로킹, 6디그, 리시브 성공률 28.57%--1차전 보다 3배 더 잘받았는데 그냥 그날그날 로또다--를 기록하면서 컵대회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현대건설 돌풍의 주역이 되었다. 주로 황연주와 양효진이 상대 블록커를 몰고 다니면 어디선가 나타나 그 빈틈으로 공격을 성공시켜 상대팀의 블록 포지션을 찢어놓거나 뒤에서 왔다갔다 하는 스크린성 플레이로 혼란을 주는 역할이 주효했다.
         컵대회 후반엔 아쉬웠지만 2013-14시즌 이후 박슬기[* 전 현대건설 레프트. 현 대구시 체육회 실업배구 선수. 공격수로는 작은키(176cm)에 공격력은 발군이었으나 수비력은 별로--절망에 가까운--였다.]가 자의로 팀을 나가 팀의 공세를 담당할 공격형 레프트가 없었는데 이번 컵대회때 보여준 활약으로 현대건설은 외국인 트라이아웃 제도로 약화된 공격력을[* 폴리나 라히모바는 세계적인 공격수였으나 올해 외국인 선수 에밀리 하통은 수비력에 중점을 둔 선수라고 평가받아 선발되었다.] 어느정도 보완해줄 선수를 발견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다시말해 가능성이 있으나 보여준게 적었던 선수에서 한계[* 리시브 능력]는 노출하고 있지만 공격력이 어느정도 검증이 된 선수가 되었다. 2013년 신인드랩 최종 승자인 건 덤[* 2015 컵대회 조차 고예림은 폭망 준결승 까지 공윤희는 25득점, 고유민은 40득점(결승 포함 48점)으로 공윤희 득점의 2배 가까운 수치를 기록]
         주전선수가 목표라고 시즌 전 인터뷰[*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volleyball&ctg=news&mod=read&office_id=451&article_id=0000000573|인터뷰 기사]]]에서 밝힌 대로 기회를 얻는 데 성공하여 개막 이후 3경기 선발 출장을 하였으나 고질적인 문제인 리시브 불안으로 1, 2세트만 채우고 교체되었다. 배구 팬들 사이에서는 현대건설이 풀세트 경기를 자주하는 주요원인으로 꼽힐 정도.[* 컵대회부터 고유민의 리시브가 그런대로 되는 경기는 현대건설이 별 문제없이 이기는 패턴이지만, 되지 않을 경우 컵대회 결승전 때나 시즌 경기처럼 풀세트로 가서 패하거나 간신히 이기는 패턴이 계속되었다.]
         시즌 최종 기록은 150 공격 시도/50 성공으로, 공격 성공률 33.33%. 157 리시브 시도/57 성공, 9실패로 리시브 성공률 30.57%. 세트당 디그 1.01, 세트당 세트 0.09를 기록했다.비슷한 롤이었던 박슬기가 은퇴 직전 시즌인 5년차에 달성한 공격 성공률-리시브 성공률 30%를 일단 프로 3년차에 달성하긴 했다. 은근한 노력가로 첫 시즌에 비한다면 경기력 자체는 점차 개선되어[* 수준이하의 서브, 수준 이하의 리시브, 수준 이하의 공격력으로 故황현주 감독에게는 배구선수가 공을 무서워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극딜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는 양철호 감독이 배구선수가 볼 미팅도 제대로 못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까였다. 다행히도 3번째 시즌엔 그렇게 욕먹지는 않았다.] 컵대회 때는 날라다니다가 시즌만 되면 수비에서 무너져 내리며 지워지는 패턴을 보였다. 터질 듯하면서 안 터지고 있어서 한국인 레프트 한자리에 고통스러워 하는 현대건설 팬들의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현대건설내 최악의 핵폐기물로 추락하다'''
         경기장 안에서 잘 웃는다. 실수해도 웃는다. 처음에 경기를 본 사람이 "쟤 왜 저러냐"며 현대건설 팬들에게 물어봤는데 "나도 모르겠다."가 나왔다.
         또 방송에서 과감히 선배들의 외모를 상중하로 등급 먹이고,[* 그래서 가장 유명한 별명인 '라마'를 만든 조예진에게는 자신보다 얼굴 수준이 떨어진다고 굴욕을 안겼다.] '교정 3년만 하면 된다.' 말도 안되는 아이유 흉내, 수지 흉내까지 내면서 방송 지분을 많이 차지 했다. 그 덕분에 당해 현대건설 숙소탐방편은 레전드 편으로 역사에 길이 남았다.[* 방송 컨셉이 섞여 있는데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해보면 그냥 조용조용한 20대 여자다. 이미지와는 다르게 낯을 꽤 가린다.]
         15-16시즌 끝나고 필생의 사업이던 쌍커풀 및 앞트임 시술을 했다. 현대건설 팬들은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 신화용 . . . . 21회 일치
         [include(틀:수원 삼성 블루윙즈/간략)]
         ||||<#074CA1> {{{#ffffff '''수원 삼성 블루윙즈 No.1'''}}} ||
         ||<#990000> {{{#ffffff 소속팀}}} || '''[[포항 스틸러스]] (2004~2016)'''[br][[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7~ ) ||
         대한민국 [[K리그1]] 수원의 주전 골키퍼이자 '''한때 K리그1 TOP 3 안에 드는 골키퍼였고 2015 시즌 최고의 골키퍼''' 포철동초-포철중-포철공고를 모두 거친 --포스텍에 갔다면 그랜드슬램-- '''포항의 성골 중 성골'''이었다. 거기에 포항 태생으로 '''팀 내의 단 1명 뿐인 [[로컬 보이]]'''였으나 2016 시즌 이후 수원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이어진 활약상으로 2013 K리그 3라운드 수원과의 경기에서 선방쇼를 보여준 끝에 3라운드 MVP로 뽑혔다. 수상 소감 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2012 시즌 후 FA로 풀리는 과정에서 포항과 있었던 연봉 협상[* 이 때 [[황진성]]과 더불어 연봉협상에 제일 난항을 겪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ACL 선수등록 하루 전에 협상을 마무리하며 아슬아슬하게 팀에 남게 되었다.]의 뒷 이야기도 풀어놨는데 포항의 모기업인 포스코가 경영악화로 신화용에 걸맞는 연봉을 못 주는 상황에서 일본 클럽이 2배에 가까운 연봉을 제시했지만, 포항 유스 출신으로서 포항과 포항팬들에 대한 애정과 [[황선홍]]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에 남는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포스코 경영진들 보고 있나?~~ ~~경영정상화 되면 두고봅시다.~~ 이때 인터뷰에서 한 정확한 발언은 "감독님이 첫 번째 이유다. 전지훈련 도중 떠난다는 말을 못하겠더라. 감독님과 두 번 다시 안 볼 사이도 아니다. 그리고 나를 믿어준 동료들도 있었다. 고향이고 팬들도 마음에 걸렸다. 남아야할 이유가 더 많았다. 떠날 이유는 돈 뿐이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124687&date=20130319&page=2|보러가기]]
         '''[[김승대]]가 [[연변 FC]]로 20억에 팔리면서''' 여기서 생긴 돈으로 결국 신화용, 황지수, 손준호 핵심 3인방은 다시 잡는데 성공했다. 매시즌 1~2월까지 거취문제로 포항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것에 비하면 12월 중순이 지나가기도 전에 재계약 기사가 떴고, 덤으로 배슬기, 김원일, 김광석 센터백 3인방도 그대로 포항에 남으면서 적어도 16시즌 수비만큼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 계약은 2년 계약이라 최소 2017년까지 포항에 잔류하게 되었다. 신화용 본인말로는 비싼 연봉을 부른 팀이 있었지만 '가족'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soccer/newsview?newsId=20151224152139569|###]] ~~포항밖에 모르는 바보~~[* 다만 포항에서도 상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 15시즌이 끝나고 공개된 연봉공개에서 신화용은 국내선수 중 4위. 6억 3천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키퍼 포지션에서 신화용보다 연봉이 높은 선수는 수원에서 7억 넘게 받은 정성룡 뿐이며 선수단 연봉 총액이 70억 내외인 포항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있는 편이다. 그만큼 포항 프런트도 긴축재정으로 구단 예산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신화용 만큼은 반드시 잡고 간다는 반증인셈.][* 다만, 기본급은 정성룡보다 한참 낮은것이 맞다. 연맹에서 발표하는 연봉공개 내역은 기타 수당을 다 합친 금액을 발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15시즌 전경기 출장+17경기 클린시트 보너스를 합친 신화용의 연봉은 이러저러해서 시즌을 절반가량 날려먹은 정성룡과 비슷하게 나올 수 밖에 없다.]
         == 수원 삼성 ==
         > '''[[수원 삼성 블루윙즈/2017년|2017 시즌]] [[김민우(축구선수)|최고의]] [[신화용|영입 2]]'''
         '''[[수원 삼성 블루윙즈/2016년|작년 시즌]], 세오타임(SEO TIME)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던 수원 수비 안정화의 일등공신. 2017 K리그 클래식 클린시트 1위.'''
         2016년 12월 우선 협상기간 동안 신화용의 거취에 관심이 쏠렸다. [[http://news.donga.com/View?gid=82057389&date=20161227|기사]] 그리고 해를 넘겨 1월 3일수원과 이적 협상을 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이미 [[문창진]], [[김원일(축구선수)|김원일]], [[신광훈]] 등 신예 베테랑 가리지 않고 핵심 멤버들을 보낸 마당에 마지막 프렌차이즈 스타마저 떠난다는 소식에 포항팬들은 [[멘붕]] 중. 게다가 팀을 떠나는 이유도 '''16시즌 종료 이후 구단이 직접 나서 신화용을 팔기 위해 여러 구단과 만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포항 프런트와 수뇌부는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특히 신화용은 자신의 성적이 좋았던 시즌에도 포항과의 의리를 지키려고 구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 '''연봉을 스스로 깎고 포항에 남았는데,''' 정작 16시즌 팀 성적과 신화용의 개인 성적이 하락하자 바로 신화용을 시장에 내논사실을 알게 된 신화용은 배신감을 느끼며 결국 포항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후 사정을 알게 된 [[최순호]]가 급하게 구단에 강력요청하여 신화용을 잡기 위해 다시 협상을 하게 되나[* 사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 감독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프런트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팀의 레전드급 선수를 팔겠다는 계획을 독단적으로 내렸다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 포스코의 낙하산 사장에 휘둘리는 포항 프런트가 얼마나 막장으로 전락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이미 신화용의 마음은 포항을 떠났고 결국 신화용은 새팀으로 이적했다. 포항은 이적료+'''[[노동건]] 임대'''를 하는 형식으로 신화용을 내줬다. 노동건이 아직 리그 정상급 기량은 아니지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축구|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군면제를 받은 20대 골키퍼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수원 프런트가 '과연 군필 골키퍼를 임대 후 이적 조건으로 포항에 줬을까?' 를 생각해본다면 즉전감 키퍼를 받고 후보 키퍼를 빌려줘 경험치도 먹이려는 [[호구]]딜일 가능성이 높다.
         정작 시즌 개막 이후 신화용은 불안한 모습을 보여수원팬들의 불안을 사고 있다.
         이후에도 허둥지둥대며 불안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자 유명한 축구 팟캐스트 [[히든풋볼]] 멤버이자 [[이스타TV]] 멤버인 해설위원 [[이주헌]]씨와 캐스터 [[박종윤]]씨는 전 토트넘 골키퍼 고메즈가 고메디언이라 불린거 처럼 신화용을 신메디언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결국 2017 시즌까지 경쟁상대로 보기도 힘들었던 노동건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으며 '''단신이라는 단점에도 그걸 극복할 수 있었던 순발력과 판단력이 나이를 먹으며 결국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시즌을 마칠 경우 수원과의 재계약 마저 불투명한 상황.
         9월 19일 전북과의 AFC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3실점을 해 다소 아쉬운 모습도 보였다. 다만 이 날 수비가 구멍이었다는 점에서는 참작의 여지가 있었는데[* 특히 두 번째 최보경의 골은 수비진이 아예 골 넣으라고 공간을 내준 셈이었다.] 후반 추가 시간 때 아드리아노의 결정적인 PK를 막고 승부차기에서도 김신욱과 이동국의 킥을 방향을 읽어 막아내는 등의 맹활약을 펼쳐 팀의 준결승행을 이끌었다. 당연히 경기 MVP는 신화용의 것이었으며, 해설진이나 팬들도 "떨어질 뻔한 수원을 신화용이 멱살 잡고 끌어올렸다"와 같은 찬사를 받았다.
          * 2017년 7월 9일, 제주전에서 K리그 통산 100번째 무실점 경기를 기록하였다.[* 포항 시절 통산 94번 + 수원 입단 후 6번]
         || 2017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33 || 30 || 2 || 1 || 5 || 6 ||
          * 2016시즌까지는 13시즌을 포항에서만 헌신해온 원클럽맨이었으나, 2017시즌 수원으로 이적하면서 아니게 되었다.
         K리그 클래식 주전 골키퍼 중에서도 수준급의 기량을 선보이며, 특히 수비 리딩은 정상급이다.[* 덕분에 2017시즌의 수원 수비가 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반사신경, 상황판단력등이 모두 평균이상이라 안정성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과감히 수비라인을 전진시키며 전진압박을 유도하는 과감성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신화용이 골리였을 때인 2017년과,정성룡,양형모,노동건이 골키퍼였을때의 수비 라인 유동성이 크게 다르다.] 경기 중 말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이를 통해 작전이 쉽게 전달되지만 상대 공격진에게 간파당할수 있는 위험성 역시 갖추고 있다. 거기에 골리치고는 단신에 속하는 신장인지라 공중볼 처리에 약점이 있으며, 역시 프리킥 상황에서도 안정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이 작은 몸 탓인지 날렵한 편이라 반사신경과 더불어 슈퍼세이브를 많이 만들어내는 골리이다.
         [[분류:1983년 출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포항 스틸러스/은퇴, 이적]] [[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현역]]
  • 황교안 . . . . 14회 일치
         * 제13기 사법연수원
         * 1994.09 ~ 1995.09 : 법무연수원 교관
         * 1997.02 ~ 1999.06 : 사법연수원 교수
         * 2006.02 ~ 2007.03 :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지청장
         * 2008.03 ~ 2009.01 :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1981년]]에 사법시험 제23회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제13기에 들어가 1983년 2월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였다.
         [[1982년]] [[12월]] [[춘천지방검찰청]] [[검사]][[시보]]가 되어 1983년 3월까지 재직했다. 1983년 [[청주지방검찰청]] 검사로 발령받았다. 1987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90년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을 거쳐 1992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94년 [[법무연수원]] 교관, 1995년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장, 1997년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1999년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형사제5부 부장검사, 2000년 [[대검찰청]] 공안제1과장, 2002년 [[서울지방검찰청]] 공안제2부 부장검사, 2003년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차장검사 등을 거쳐 2004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가 되고, 2005년부터 2006년까지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 차장검사로 재직하면서 [[삼성 X파일 사건]]의 수사를 지휘하였다. [[2005년]]에는 [[국정원·안기부 도청사건]]의 수사를 지휘하였다.
         한때 그는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탈락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93507.html?_fr=st1 황교안의 검사장 탈락, 밉보였나 무능했나] 한겨레신문 2015년 05월 29일자</ref> 이후 [[2006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장, 2007년 [[서울고검]] 검사 등을 역임했다. [[2007년]] [[10월 21일]] 그는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자인 [[이명박]]을 비판하는 글을 써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ref name="giriss">[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23318 황교안,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이명박 추한 모습”] 미디어오늘 2015.05.28.</ref> 당시 황교안은 <하느님 편에서 보기>라는 제목의 글을 썼는데, 글에서 "요즘 한나라당에서는 경선후보들 사이에 검증공방이 한창이고, 그 과정에서 소위 네거티브 전술도 종종 등장하여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유력한 경선후보 중의 한 분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선 경쟁은 몹시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왜 그런 모습을 보이느냐고 질책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썼다.<ref name="giriss"/>
         2008년 3월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을 거쳐 2009년 1월 창원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부임했고, [[2009년]] [[8월]] [[대구고검]] 검사장, [[2011년]] [[1월]]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부임했다가 [[2011년]] [[8월 2일]] 법관에서 퇴직했다.<ref>[http://www.nocutnews.co.kr/news/860997 차동민 서울고검장, 조근호 법무연수원장 검사 생활 마감] 노컷뉴스 2011년 08월 02일자</ref> 변호사 재직 당시 그는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펴내기도 한 공안통이라는 평이 있다.<ref name="rigi">[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34066 새 정부 법무장관에 황교안, 국방부장관에 김병관]</ref>
         2013년 9월 4일 정부를 대표하여 국회에서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한 황교안 장관은 이 사건 범행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정면도전이자 위협이라 하였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90476721 이석기 체포동의안 통과 - 황교안 “이석기는 지하혁명조직 총책” … 野도 체포동의 당론 찬성]《한국경제》2013년 9월 5일</ref> 이석기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재석의원 289명 가운데 찬성 258명, 반대 14명, 기권 11명, 무효 6명 등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되었고, 수원지방법원에서는 같은 달 5일 이석기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였으며 검찰은 같은 달 26일 이석기 등을 내란음모 등 혐의로 기소한 후 2014년 2월 3일 결심 공판에서 징역 20년을 구형하였다.<ref>[http://www.ytn.co.kr/_ln/0101_201402031418170083 '압수수색부터 1심 판결까지]《YTN》2014년 2월 3일</ref> 2014년 2월 17일 수원지법은 내란음모, 선동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여 이석기에 대하여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하였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24490.html 이석기 내란 음모 혐의 인정돼…징역 12년]《한겨레》2014년 2월 17일 이정애 기자</ref> 이에 검찰과 피고인측은 모두 항소를 하였고 2014년 8월 11일 서울고법 재판부는 내란선동에 대하여는 유죄를 인정하였으나 내란음모는 무죄로 판단하고 이석기에 대하여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11/2014081101979.html RO 내란음모 항소심 재판부, 이석기 의원 징역 9년 선고…'내란 선동' 인정, '내란음모' 무죄]《조선일보》2014년 8월 11일 이정원 기자</ref> 역시 양측이 모두 상고하여 이 사건은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었는데, 2015년 1월 22일 대법원은 내란선동은 인정되나 내란음모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다수 의견에 따라 상고를 기각하였고, 이석기에 대해 징역 9년을 선고한 원심은 확정되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23/2015012300328.html [이석기 확정 판결] 130명 회합 목적은 폭동… RO, 의심은 들지만 내란음모는 無罪]《조선일보》2015년 1월 23일 양은경 기자</ref>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12회 일치
         세번째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이며, 2015 [[K리그 클래식]] 최종 11위였던 [[부산 아이파크]]와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5시즌]]의 최종승자였던 [[수원 FC]]가 K리그 클래식 마지막 티켓을 두고 벌인 대회였다.
         대회요강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과 동일하였다. 이에 따라 1차전은 챌린지 플레이오프 승자인 수원 FC의 홈에서, 2차전은 클래식 11위 부산의 홈에서 경기를 가졌다.
         || 경기장 ||<-3><:>수원종합운동장||
         || 홈/원정 || [[수원 FC]] || vs || [[부산 아이파크]] ||
         양 팀은 단 한번도 대결을 펼친 적이 없었기에 클래식에서 쌓은 내공이 있었던 부산 아이파크가 이길 것으로 예상한 사람이 많았었다. 게다가 수원 FC는 후반 6분경에 수비수 임하람이 거친 백태클로 경고 없이 레드카드를 받아 나가는 상황까지 겹쳤지만 경기는 단 1골로 승패가 가려졌고, 수원 FC가 선승을 가져가면서 2차전까지 이 분위기를 이어가게 된다.
         || 홈/원정 || [[부산 아이파크]] || vs || [[수원 FC]] ||
         부산은 1차전의 패배 때문에 반드시 2골 이상을 넣어야지만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는 반면에, 수원FC는 1차전(홈)에서 1골을 넣었기 때문에 역으로 1골만 넣어도 3실점 이상 먹이지만 않는다면 승격이 눈앞에 있던 상황.
         이런 이유로 1차전에서는 수원이 점유율을 가져가는 축구를 했던 반면에, 2차전은 부산이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며 강력하게 압박하는 축구를 구사하였다. 전반만 보면 부산의 점유율은 60%에 슈팅 숫자는 4개(유효슈팅 3)였던 반면에, 수원은 점유율 40%에 슈팅 2(유효 0)뿐이었다.
         하지만 조덕제 감독이 구상한 반칙을 통한 흐름을 끊어주는 전략이 유효했고,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해 경기 종료 즈음하여 2골이 터지면서 수원의 승격이 확정된다.
          1. 수원 FC가 승격함으로써 [[K리그 클래식]] 사상 최초로 지역더비가 완성된 점.[* 축구역사에서 더비라는 용어는 '''지역라이벌'''을 가리키는 것이 확장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축구사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 셈]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11회 일치
         챌린지 3위: [[수원 FC]]
         || 경기장 ||<-3><:>수원종합운동장||
         || 홈/원정 || [[수원 FC]] || vs || [[서울 이랜드]] ||
         2015시즌 양 팀의 상대전적은 2승 2패로 팽팽한 수준이었던데다가 무승부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홈팀에게 유리한 "무승부시에는 홈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이라는 규정이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예측이 많았었다. 하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무승부가 나왔고, 이에 3위팀(홈)인 수원 FC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영광의 실책으로 발생한 자책골이 가장 큰 패인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 김영광은 전후반 90분동안 21개의 슈팅중에 15개나 유효슈팅이었던 수원 FC의 날카로운 공격을 잘 막아냈을 정도로 활약은 준수했다. 자책골에 묻혀버렸을 뿐.
         || 홈/원정 || [[대구 FC]] || vs || [[수원 FC]] ||
         대구는 [[K리그 챌린지]]에서 후반기 부진으로 [[K리그 클래식]] 자동진출권을 놓쳤기 때문에 사기가 상당히 저하된 부분이 있었다. 게다가 2015시즌 대구는 수원을 상대로 1승 1무 2패로 상성마저 최악이었는데다가 대구가 챌린지에 합류했던 2014년부터 수원 FC와의 홈경기는 '''단 1승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반전을 믿을 수 있는건 무승부로 시합을 종료하여 승강 플레이오프로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으나...
         자파가 역전골을 넣으며 대구는 급격히 무너졌고, 수원FC는 특유의 적절한 반칙으로 대구의 흐름을 끊는 경기운영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이날 나온 총 반칙수는 오프사이드를 제외하고 48개였고, 이 중 31개가 수원FC가 저지른 반칙이었다. 오프사이드까지 포함하면 총 50개가 넘는 반칙수를 기록한 경기였다.
          * 1부리그를 밟은 적이 없는 팀이 처음으로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 대회였고, 수원 FC는 이 기세를 몰아 승격까지 이루게 된다.
  • 우찬양 . . . . 11회 일치
         ||<#00703c> '''{{{#eee156 수원 컨티넨탈컵}}}''' ||<#00703c> '''{{{#eee156 1회}}}''' ||<#00703c> '''{{{#eee156 2016}}}''' ||
         ||<#00703c> '''{{{#eee156 수원 JS컵}}}''' ||<#00703c> '''{{{#eee156 1회}}}''' ||<#00703c> '''{{{#eee156 2016}}}''' ||
         ||<#00703c> '''{{{#eee156 2015.04.29}}}''' ||<#00703c> '''{{{#eee156 2015 수원 JS컵 U-18 국제청소년축구대회}}}''' ||<#00703c> '''{{{#eee156 대한민국 1 : 0 우루과이}}}''' ||<#00703c> '''{{{#eee156 -}}}''' ||
         ||<#00703c> '''{{{#eee156 2015.05.01}}}''' ||<#00703c> '''{{{#eee156 2015 수원 JS컵 U-18 국제청소년축구대회}}}''' ||<#00703c> '''{{{#eee156 대한민국 0 : 0 벨기에}}}''' ||<#00703c> '''{{{#eee1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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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호(축구선수) . . . . 8회 일치
          [[분류:1988년 출생]][[분류:동구(대구)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은퇴, 이적]][[분류:경찰 축구단/전역]][[분류:수원 FC/현역]]
         [include(틀:수원 FC/간략)]
         ||||<:><#00396f> '''{{{#ffffff 수원 FC No. 4}}}''' ||
         || '''소속팀''' || [[포항 스틸러스]] (2010~2018.7) [br] [[아산 무궁화|안산 무궁화]] (2016, 군복무) [br] [[수원 FC]] (2018.7~ ) ||
         [[수원 FC]] 소속 축구선수로 주 포지션은 [[풀백]]이다. 오른발잡이지만 왼발잡이 풀백이 워낙 희귀한지라 주로 왼쪽 풀백으로 뛰며 오른쪽 풀백도 가능하다.
         이 해 리그 13경기에 출장하며 가능성을 보인 그는 다음 시즌, 2012년 4월 3일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와의 2012 ACL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6월 17일 FC 서울과의 리그 경기에서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으며 10월 7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는 멀티골을 넣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실제로 2012시즌 김대호는 서울, 수원, 전북, 울산 등 강팀만을 상대로 5골을 기록하며 강팀 킬러로서 주목을 받았다. 시즌 기록은 23경기 5골[* 챔피언스리그 제외]. 2013시즌에는 28경기에 출장하며 주전 풀백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고 골은 없으나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비록 [[아디]]에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K리그 대상 베스트일레븐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등 개인적으로도 뜻깊은 시즌이었다.
         === [[수원 FC]] ===
         2018년 7월 13일 [[수원 FC]]로 이적한다는 [[https://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542&aid=0000000088&|기사]]가 나왔다. 여담으로 입단 후 [[등번호]]가 바뀌었는데, 입단 당시에는 출생년도인 1988년에서 따온 88번이었으나, 이후 [[임하람]]의 [[강릉시청 축구단]] 임대로 공석이 된 4번으로 변경되었다.
  • 최석기 . . . . 8회 일치
         | 현 소속팀 =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 현재 소속팀 =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그는 [[NH농협 2008~2009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로 [[수원 KEPCO 45]]의 지명을 받으며 입단하였다. 그러나 팀은 단 한 번의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고 연패를 당하게 되었고, 이는 [[공정배]] 감독(현재[[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단장) 이 경질되는 빌미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소속팀이 상무를 이기고 기나긴 25연패를 끊으며 첫 승을 기록하였을 때에는 감격스러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2009년]] [[3월 5일]]에 열린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의 경기에서 12득점, 5블로킹을 올리는 활약으로 이변을 일으키는 데 기여하였다.<ref>[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70908 〈프로배구〉KEPCO 45, 현대캐피탈 제압 '대이변'] 《제주투데이》 2009년 3월 5일 23:54, 2009년 3월 19일 1:37 확인</ref>
         최석기는 신인으로는 유일하게 개인기록상 주요 부문인 블로킹 부문에서 5위 안에 들면서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의 [[세터 (배구)|세터]] [[황동일]]과 함께 신인왕 후보로 오를 만큼 활약을 펼쳤으나<ref>[http://www.sportsseoul.com/news2/sports/volleyball/2009/0317/20090317101030400000000_6732676814.html 지금은'석기시대' KEPCO45 최석기 신인상 맹추격] 《스포츠서울》2009년 3월 17일 12:23, 2009년 3월 19일 1:42 확인</ref> 전 경기를 소화한 황동일에 밀려 신인상 수상에 실패하였다.<ref>[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ketball/Article.asp?aid=20090416004415&subctg1=05&subctg2=00 프로배구 정규리그 MVP 박철우?데라크루즈, 공격남녀 최후의 승자] 《스포츠월드》 2009년 4월 16일 22:53, 2009년 4월 19일 23:01 확인</ref> 하지만 그는 팀내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NH농협 2008~2009 V-리그 올스타전]]에는 [[한국 배구 연맹]]의 추천으로 [[수원 KEPCO 45]]의 유일한 올스타 선수로 참가하였다.
         [[2015년]] [[12월 23일]] [[강민웅]], [[전진용]]과의 트레이드로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로 이적하였으나 2017-18 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고,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와의 계약이 결렬되면서 다시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으로 이적하였다.
         최석기는 블로킹을 성공시키면 처음에는 덩실덩실 춤을 추는 세레모니를 펼쳤다. 이날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와 [[수원]] 홈경기에서 최석기가 [[로베르틀란디 시몬]] 한테 블로킹을 무려 8개나 잡아내며 시몬 킬러로 등극했다. 득점을 올릴 때마다 자진방아타령이 울려퍼진다. 여기다 그가 세레모니하는 장면은 [[KBS N sports]]의 배구 프로그램 [[스페셜 V]]에서 선정한 주간 베스트로 뽑히기도 했다. 이후에 공격 성공후 자신이 개발한 세레모니를 펼치면서 팬들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선수 명단}}
  • 최성국 (축구선수) . . . . 7회 일치
         | 클럽 =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 호랑이]] <br /> → [[가시와 레이솔]] (임대) <br /> [[성남 FC|성남 일화 천마]] <br /> → [[광주 상무 불사조]] (군 복무) <br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1년]] [[1월 10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최성국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수원, 공격수 최성국 영입 발표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11016004047§ion_code=10&key=%C3%D6%BC%BA%B1%B9&field=gisa_title&search_key=y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10-1-10}} }}</ref> 수원에 입단한 후, [[2011년]] [[3월 5일]] [[FC 서울|서울]]과의 [[K리그 2011|2011 시즌]] 개막전에서 데뷔전을 치렀다.<ref>{{뉴스 인용 |제목=‘게인리히 데뷔골’ 수원, K리그 슈퍼매치 완승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30614522512§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이민선 |날짜=2011년 3월 6일 }}</ref> [[2011년]] [[4월 15일]] [[강원 FC|강원]]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마토 4호골’ 수원, 2-0 완승…강원 시즌 6연패 수렁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41520291628§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홍재민 |날짜=2011년 4월 15일 }}</ref>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가시와 레이솔의 축구 선수]][[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FK 라보트니치키의 축구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7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정명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해설자]][[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한병주 . . . . 7회 일치
          | 사망지 = {{KOR}} [[경기도]] [[수원시|수원]]
          | 거주지 = 조선 [[충청북도|충청도]] [[청원군|청원]] <br/> 조선 [[청주시|충청도 청주]] <br/> [[대한제국]] [[한성부]] <br/> 대한제국 [[시흥시|경기도 시흥]] <br/> [[일제 강점기]] [[경성부]] <br/> 일제 강점기 [[평안북도]] [[신의주시|신의주]] <br/>[[중화민국]] [[장쑤 성]] [[상하이 시|상하이]] <br/>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br/> 대한민국 [[경기도]] [[시흥시|시흥]] <br/>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시|수원]]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심각한 긴장감이 도사리던 [[시흥시|경기도 시흥]]을 떠나 피난하면서 [[수원시|경기도 수원]]에 간이 거주하던 중 끝내 경기도 수원에서 부인(夫人)과 장남(長男) 내외 일가, 차남(次男) 내외 일가가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72세로 병사하였다.
  • 양준혁 . . . . 6회 일치
         |개인 통산 최다 2루타(328개) ||2004.7.10 ||[[삼성 라이온즈|삼성]] ||[[현대 유니콘스|현대]] ||수원 || ||[[장종훈]] (전 한화) ||
         |개인 통산 800타점 ||2001.7.25 ||[[LG 트윈스|LG]] ||[[현대 유니콘스|현대]] ||수원 || |||| ||역대 3번째 기록
         |개인 통산 1200타점 ||2006.10.2 ||[[삼성 라이온즈|삼성]] ||[[현대 유니콘스|현대]] ||수원 ||6회초 1사 1,3루에서 2타점 2루타를 침.|| || ||최초 기록
         |개인 통산 1000경기 출장 ||2001.5.8 ||[[LG 트윈스|LG]] ||[[현대 유니콘스|현대]] ||수원 || || ||
         |두 번째 [[사이클링 히트]] ||2003.4.15 ||[[삼성 라이온즈|삼성]] ||[[현대 유니콘스|현대]] ||수원 ||첫 타석 솔로 홈런, 두 번째 타석 좌전 안타, 세 번째 타석 2루타, 네 번째 타석 3루타|| ||역대 10번째 기록,(한 선수가 2번째 기록하는 것은)최초 기록.
         |한 경기 최다 안타(6개) ||2007.7.13 ||[[삼성 라이온즈|삼성]] ||[[현대 유니콘스|현대]] ||수원 ||첫타석 1루타,두 번째 타석 우익수뒤 홈런(120m),세 번째 타석 1루타,다섯 번째 타석 우중간 홈런(130m),여섯 번째 타석 우중간 홈런(130m),일곱 번째 타석 1루타 || ||역대 4번째 기록
  • 이동흡 . . . . 6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시]]의 [[고성 이씨|고성]](固城) 집안에서 [[1951년]] [[1월 27일]]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제15회 [[사법시험 (대한민국)|사법시험]]에 합격하여 5기 [[사법연수원]]과 군 법무관을 마친 1978년 [[부산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종교는 [[불교]]이다.<ref>허신열, [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701495&sid=E&tid=1 박근혜 인사에 불교계 민감반응], 내일신문</ref>
         판사로 재직하면서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사법발전위원회 위원,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던 이동흡은 2000년에 [[수원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직무대우에 이어 2005년 2월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다 2005년 8월에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서울가정법원]]에서 법원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9월에 [[한나라당]] 추천으로 국회에서 임기 6년의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임명되었다. 2012년 9월 헌법재판관에서 물러난 이후인 [[2013년]] 1월 3일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되었으나 특정업무경비 유용 의혹 등으로 인해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 41일만인 [[2013년]] 2월 13일에 헌법재판소장에서 사퇴하였다.
         * 1993년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
         * 1993년 [[사법연수원]] 교수
         * 2000년 [[수원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직무대우
  • 이승현 (1985년 7월) . . . . 6회 일치
         |현 소속팀=[[수원 FC]]
         |클럽=[[부산 아이파크]] <br> [[전북 현대 모터스]] <br> → [[상주 상무 축구단|상주 상무]] (군 복무)<br>[[수원 FC]]
         '''이승현'''([[1985년]] [[7월 25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미드필더#윙어|윙어]]이다. 현재 [[수원 FC]] 소속으로 뛰고 있다.
         * [[2016년]] ~ 현재 {{국기그림|대한민국}} [[수원 FC]]
         {{수원 FC 선수 명단}}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5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반야월초등학교 동문]][[분류:청구중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축구 윙어]]
  • 창원시 . . . . 6회 일치
         대한민국의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많은 5개의 [[일반구]]가 설치되어 있고, [[수원시]]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시의원 선거구도 18개로 가장 많다.[* 일반적으로 시의원 선거구는 '가'~'하' 순서로 선거구 기호를 매기는데, 통합되면서 '하'선거구까지 다 채우고도 모자라 '거'에서 '러'까지 매겼다. 참고로 거~러 선거구는 모두 진해구에 있다.] 전반적인 인구는 2010년대 들어 완만한 증가세를 보여 110만을 돌파했지만, 장기적으로 청년층의 인구 감소가 꽤나 심각하게 진행 중에 있다.[* 우선 조선과 기계, 자동차 등의 창원시 경제를 지탱하는 중후장대 산업 성장세가 규모 면에서 한계에 다다르고, 외곽 도로망이 확충되면서 집값이 비싼 창원을 떠나 시계 밖의 장유, 진영 등의 신도시로의 접근성이 향상되어 인구가 유출되는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또한 마산합포구 지역은 면지구뿐만 아니라 옛 시가지의 노후화 때문에 인구유출이 가속화되고 있기도 하며, 그나마 월영마을에 형성된 학군이나 현동지구 등의 신규 아파트 택지공급이 감소세를 덜어주는 정도다.]
         여튼 현재 창원의 경제적 규모는 광역시급이며, 통합시 출범을 토대로 광역시 승격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창원시가 경상남도에서 빠져나간다면 경제적 타격이 크기 때문에 경남은 창원이 독립하고자 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역 균형발전 정책상 수원과 더불어 광역시 승격은 매우 힘들다. 다만 통합으로 인한 혜택을 몇 가지 받기는 했지만 역시나 시 규모에 걸맞는 권한을 못 가졌다는 문제가 있으므로 비슷한 처지인 [[수원시|수원]], [[성남시|성남]], [[고양시|고양]] 등과 더불어 새로운 자치단체 규정을 만들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는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 할 듯. 최근 여러번의 선거를 거치며 광역시로 승격하자는 슬로건과 플래카드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긴 한데, 이미 언급했듯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자세한 내용은 [[창원광역시]] 참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낙동강]]에 접한 [[의창구]]의 동읍과 대산면 지역이 꽤 넓은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이 지역은 원래 논농사가 흥해서 농사에 필요한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대한 저수지를 만들어 놨는데, 이것이 주남 저수지. 하지만 근래엔 논농사 보다는 지역 특산물로 떠오른 [[단감]]을 재배하는 과수원이 늘어나는 바람에 주남 저수지는 인간의 손을 벗어나 철새의 낙원으로 재탄생했다.
          * 단감 : 창원하면 국가산업단지의 정밀기계공업이 많이 알려져 있어 공업도시로 알고들 있는데 의외로 단감의 전국 최대생산지이다.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산하나만 넘어가면~~ 논과 밭이 펼쳐져있고 감나무 과수원과 산에 빼곡하게 심어진 감나무를 볼수 있다. 단감은 창원과 가까운 진영이 전국적으로는 더 많은 지명도를 가지고 있지만 의외로 생산량은 창원이 더 많다. 진영이 더 알려진 이유는 진영에도 단감이 많이 생산되는 이유도 있지만 폐쇄적인 지형의 창원은 유통이 불편해 창원에서 나는 단감을 진영에 가져가 팔아 전국적인 생산지로 진영이 더 알려졌다.
  • 킹덤/508화 . . . . 6회 일치
          * [[간두]]는 우왕좌왕하던 동안 창까지 잃어먹고 적에게 포위된다. 그러나 이때 [[수원]] 보병장이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나 간두와 신병들을 구한다.
          * [[수원]] 보병장이 직접 신병들을 구하러 왔다. 그는 신병들에게 "기대에 못 미치는건 아닌가"라며 오를 유지하라고 하지 않았냐고 야단친다. 간두는 노평 탓이라고 변명하다 걷어차인다. 수원은 간두같이 깝죽거리는 것들이 첫 출진 때 죽기 십상이라며 쓴소릴 한다. 간두와 친구는 울상을 짓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다. 수원이 돌아서며 말한다.
          * 그때 [[전유]] 천인장이 적에게 당해 낙마한다. 적의 [[뇌화]]라는 장수가 기마대를 이끌고 활약 중이다. 전유를 말에서 떨어뜨린 뇌화는 거침없이 비신대를 휘저어놓는다. 추준은 그를 보고 "성가신게 나왔다"고 말하고 수원도 말없이 동의한다. 간두는 저런 괴물을 어떻게 막느냐고 몸을 떤다.
          * 하지만 수원은 곧 걱정을 끊는다. 간두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우리편엔 신이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신이 달려와 [[왕의(킹덤)|왕의]] 장군의 창으로 뇌화를 두동강 내버린다. 그러면서 아직은 그 창이 무겁다고 중얼거린다.
  • 김승대 . . . . 5회 일치
          * 2013년 3월 17일, 수원전에서 K리그 클래식 데뷔전을 치뤘다.
          * 2017년 7월 15일, 수원전에서 복귀 후 첫 경기를 치렀다.
         ||<#00703c> '''{{{#eee156 2013.11.10}}}''' ||<#00703c> '''{{{#eee156 포항}}}''' ||<#00703c> '''{{{#eee156 수원}}}''' ||<#00703c> '''{{{#eee156 1도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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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자르 베셀리노비치]], [[티아고 알베스 살레스]] 등을 영입하면서 이명주, 강수일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다시 2선으로 뛸 것으로 예견되었다. 원정 개막전인 [[수원 삼성]]과의 경기는 잘 뛰었으나 [[울산 현대]]와의 홈 개막전을 앞두고 발가락 부상을 당했다(...) 게다가 그 다음 경기가 [[FC 서울]], [[전북 현대]]를 연속으로 만나야 하는데 서울과의 경기에서도 출전하지 못 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 3월 국가대표 소집에 되지 못함도 서러운데 울산과의 경기가 수비진의 폭망으로 4:2로 대패를 당했다. 그리고 못뛴 게 분했는지 다음 홈경기인 서울경기서 특유의 라인브레이킹을 살려내며 2골을 넣고 팀을 승리로 이끈다.
  • 장세용 . . . . 5회 일치
         7월 6일, 이철우 경상북도지사와의 면담에서 새마을운동 사업 축소에는 한발 물러섰고, 대구취수원 구미 이전에는 구미시민 동의하에 이전하는 것으로 의견을 밝혔다.
         대구취수원 구미 이전에서는 구미 공단 폐수 무방류 시스템 도입이 먼저라고 하였으며, 대구는 당연히 폐수 무방류라도 결국 방류되기에 폐수가 완전히 처리되지 않는다고 취수원 이전을 고집한다. 하지만, 대구시의 주장에서 모순되는 점이 하나는 대구 성서 공단에서도 폐수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하며,[* 당연히 대구가 낙동강 삼각주 주변에 위치한 도시가 아니기에, 대구보다 하류인 부울경도 같은 논리로 취수원 이전을 시도할 수 있다.] 둘은 대구의 차세대 산업 중 하나가 물 산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서공단에서 방류된 폐수의 유해물질 농도가 구미공단에서 방류된 폐수보다 높다는 조사가 나오면서 결정타를 먹었다.
         구미 5공단 분양 저조에서는 분양가를 내리고, 업종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제시하였지만, 분양에 제동 건 쪽인 산업자원부와 홍의락 의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대구취수원은 달성에 있지만, 지역구인 대구 북구 을은 낙동강 물을 이용한다.]이 들어줄지는...
  • 최만린 . . . . 5회 일치
         [[본관]]은 [[수원 최씨|수원]](水原)이고 [[경성부]](지금의 [[서울특별시|서울]]) 출생이다.
         [[1935년]] 아버지 최춘빈(崔春彬)과 지석모(池錫模)의 외동딸인 어머니 지명순(池明淳) 사이에 2대독자로 태어났다. 본관은 [[수원 최씨|수원]]. 부친은 [[동아일보]] 만주 지국장이었고 어머니는 모더니스트였다. 양친 모두 [[본적]]이 [[서울특별시|서울]] [[종로구|종로]]이며 모두 서울 토박이 중에서도 골수 서울 토박이였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던 외가에서 외조부의 사랑을 받으면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나, 경기중학교 3학년 때인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며 부모님과 형제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조각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수원 최씨]][[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추계예술대학교 교수]][[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정일권]][[분류:노태우]][[분류:김영삼]][[분류:이회창]][[분류:김종필]][[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백선엽]][[분류:심대평]][[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분류:프랫 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
  • 최문식 . . . . 5회 일치
         |클럽=[[포항 스틸러스|포항 아톰즈 / 포항 스틸러스]]<br />→ [[국군체육부대|상무]] (군복무)<br />[[전남 드래곤즈]]<br />[[오이타 트리니타]]<br />[[수원 삼성 블루윙즈]]<br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
         결국 [[1994년 FIFA 월드컵|1994년 미국 월드컵]] 출전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였던 [[김호]]의 부름을 받고, [[2001년]] 6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으며, [[2002년]]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SK]]로 이적했으며, 한해 동안 28경기에 출전하며 준수한 활약을 보인뒤, 은퇴를 선언하였다.
         최문식은 K리그 클래식 잔류라는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축구철학을 토대로 짧은 패스 위주의 공격 축구 전술을 구사함으서 팀컬러를 맞추고 선수 개개인의 기술력을 끓어올리는 등의 장기적인 미래를 보는 축구를 펼치겠다고 밝혔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11&aid=0000476883/최문식, 대전 9대 감독 취임 "대전의 색 만든다"] </ref> [[6월 3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서 감독으로서 데뷔전을 치루었으나 1:2로 패했다. [[8월 15일]] [[성남 FC]]전 패배로 대전은 14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졌고, [[8월 19일]] [[광주 FC]]와의 26라운드 원정 경기서 2:1 승리를 거두며, 겨우 최문식의 데뷔 이후 첫 승과 시즌 2승을 거두었다. [[10월 4일]] [[울산 현대]]와의 홈경기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K리그에 스플릿 라운드 제도 도입 이후 최초 스플릿 라운드 이전 홈 무승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10월 18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서 1:0 승을 거두며 리그 개막 7개월만에 홈 첫승을 거두었으며, 이후 [[부산 아이파크]]와의 홈 경기서도 승리하며 2연승을 거두었지만 [[울산 현대]]와의 원정 경기서 패해 사실상 강등이 확정되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과의 홈 폐막전서 패하며 강등이 확정되었다. 이에 분노한 대전팬들이 경기 종료 후 선수단 버스 앞에서 최문식 감독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감독]][[분류:199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수원대학교 동문]][[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코칭스태프]][[분류:K리그2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코칭스태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김대환 (법조인) . . . . 4회 일치
         1942년에 [[경상북도]] 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육군 대위를 전역한 이후 판사에 임용되어 서울형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와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부장판사를 하다가 [[서울고등법원]]에서 수석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인 1999년 10월 11일에 [[수원지방법원]]장에 임명되었다. [[수원지방법원]]장에 임명된 직후인 11월 20일에 수원지역 주민들의 등기민원 불편을 해소할 목적으로 2000년까지 수원시내 택지개발지구에 2개 등기소 를 설립하였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559307]</ref> 2000년 6월에 [[최종영]] 대법원장이 제청하는 신임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었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008261]</ref> 2000년 7월21일에 [[대전고등법원]]장으로 승진하였으며 2001년 2월 12일에 [[서울고등법원]]장으로 전보되면서 대법원장에 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에 지명되었다. 서울고등법원장을 끝으로 법관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법무법인 율촌에서 송무 Group<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6&aid=0000189786]</ref> 변호사를 하다가 2004년 3월 2일에 박영철 고려대 교수와 함께 대법원장 추천으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에 임명되었다. 2013년 4월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을 관할하는 서울법원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과 센터장을 맡았다.<ref>[http://news1.kr/articles/?1087614]</ref>
  • 대한민국 FA컵/2016시즌 . . . . 4회 일치
         || 54 || 2016년 05월 11일 || [[수원 삼성]] || : || 경주한국수력원자력(주) || 1:0 ||
         || 57 || 2016년 05월 11일 || [[대전시티즌]] || : || [[수원 FC]] || 1:1(3:1) ||
          * K리그 클래식팀: 전남, 전북, 성남, 광주, FC서울, 수원 삼성, 울산
         || 68 || 2016년 06월 22일 || [[수원 삼성]] || : || [[부산 아이파크]] || 0:0 ||
  • 박홍우 . . . . 4회 일치
         * [[1997년]] ~ [[1998년]] [[사법연수원]] 교수 (고법판사)
         * [[1985년]] ~ [[1989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판사
         * [[1980년]]~ [[1982년]], 사법연수원 제12기 수료
         * 미국헌법, 사법연수원 (2008)
  • 백남순 (1929년) . . . . 4회 일치
         |출생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시]] <br />[[일제강점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 기록)<br>[[일제강점기]] [[경기도|경기도 수원]]
         [[경기도]] [[수원시]] 출신이고<ref>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출신이라 한다.</ref>,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인민회의]] 9, 10, 11기 대의원과 [[외무상]]을 역임했다.
         [[분류:1929년 태어남]][[분류:2007년 죽음]][[분류:청도 백씨]][[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분류:20세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장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분류:사회주의자]][[분류:공산주의자]][[분류:수원시 출신]][[분류:김일성종합대학 동문]][[분류:병사한 사람]][[분류:폴란드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분류:월북자]][[분류:최고인민회의 대의원]]
  • 이명주 (축구선수) . . . . 4회 일치
         이후로도 [[6월 27일]]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전과 [[7월 1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전에서 1도움씩을 기록했고 팀의 [[FA컵 2012]] 우승에도 일조했지만 7월 1일 이후로 공격 포인트가 없어 "출장 수로만 신인왕 후보"이라는 비아냥을 받다가 10월 28일 [[경남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38분 중거리슛으로 골을 기록했고 신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K리그 주간 베스트 11 MVP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 11월 17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전 1골, 11월 25일 [[경남 FC|경남]]전 1골 1도움, 11월 29일 [[FC 서울|서울]]전 2도움, 12월 2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전 1골을 터뜨리며 신인왕 후보로 거론된 선수들 중 가장 많은 5골 6도움 11개의 공격 포인트를 쌓았다. 이명주는 [[12월 3일]]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광주 FC]]의 [[이한샘]], [[전남 드래곤즈]]의 [[박선용]]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제치고 [[K리그 영플레이어상|신인 선수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K리그 대상) ‘신인왕’ 이명주 “포항의 축구스타일, 나랑 잘 맞았다”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452360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2-12-03}} }}</ref>
  • 조진호 (축구인) . . . . 4회 일치
         [[K리그 챌린지]]에서 시작한 2014 시즌 개막전에선 [[수원 FC]]에 대패하였으나 [[3월 30일]] [[고양 Hi FC]]전 4:1 대승을 시작으로 [[4월 27일]] [[부천 FC 1995]]전 까지 총 리그 5연승을 거두었으며, 5월 8일 [[감독 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6월 21일]] [[대구 FC]]전까지 총 14경기 연속 무패와 더불어 한시즌동안 11경기 연속 홈 무패를 기록하며 구단의 한시즌 홈 최다 연속무패 신기록을 세움<ref> 이 기록은 2016년 [[최문식]] 감독이 한시즌 홈 12경기 무패를 기록하며 깨졌다.</ref>과 동시에 리그의 절대강자로 치고 올라가는 등 상승세를 보이자 [[5월 8일]] 마침내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5월 11일]] [[안산 경찰청 축구단]]과의 정식감독으로서의 데뷔전에서 2:0승을 이끌었으며, 5월 이달의 감독에 선정되었다.<ref> [http://osen.mt.co.kr/article/G1109868314/ 대전 돌풍 이끈 조진호, 연맹 선정 5월의 감독] </ref> 이후 시즌 종료까지 꾸준히 리그 1위 자리를 수성하며 대전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으며, K리그 챌린지 최우수감독에 선정되었으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한시즌에 20승 이상을 거둔 감독이 되었으며, 대전팬들 사이에서 '''갓진호'''라는 별명을 얻었다. <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39&aid=0002028091/‘갓진호’, 축구특별시 부활 이끈 지휘자] </ref>
         [[10월 10일]] 당일 [[스위스]] 베른 주 빌에서 열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의 평가전 시작 전 선수들이 묵념의 시간을 가졌으며, 10월 14일부터 15일까지 모든 K리그 경기에서도 추모 묵념을 진행했으며, [[10월 14일]] [[수원 FC]]와 [[부산 아이파크]]의 경기에서는 부산 측 원정 서포터석에 조진호 감독의 사진을 걸었며, 이 날 [[이정협 (축구 선수)|이정협]]은 패널티킥으로 골을 성공시킨 뒤 조진호 감독의 사진 앞에 달려가 얼굴을 파묻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10월 15일]] [[대전 시티즌]]과 [[부천 FC 1995]]와의 경기에서 대전 홈팬들이 조진호 감독이 대전을 K리그 챌린지에서 우승시켰던 2014년을 기억하고 추억하고자 경기 시작 후 14분 동안 응원을 하지 않으며 조진호 감독을 추모했다.
         비록 [[수원 삼성 블루윙즈]]과의 FA컵 4강전은 조진호 감독의 사망으로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감독 대행이 지휘했지만,이미 조진호가 FA컵 4강 대진표가 나왔을 때 대비해 전술을 모두 파악해 놓은 상태였으며, 이를 인수인계받은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의 전술을 파악해 전방 압박을 충실히 해서 조진호 감독이 원했던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였고, 승부차기 끝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꺾고 FA컵 결승에 진출하며 명장의 마지막 경기에 피날레를 찍었으며, 이날 경기에서 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이 입었던 속옷을 입고 경기를 지휘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71567 |제목="아, 감독님" 이정협의 되새김질과 이승엽 대행의 '속옷'|출판사=SPO TV |저자=조형에 |날짜=2017-10-26}}</ref>
  • 최윤수(정무직공무원) . . . . 4회 일치
         1989년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1993년 [[사법연수원]]을 22기로 수료하였다. 그 후 잠깐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검찰에 들어갔으며, 서울지검, [[법무부]] 감찰관실 검사로 근무하다가 2009년 [[대검찰청]] 조직범죄부장으로 승진하였다.
         제22기 사법연수원 수료1993.
         수원지검 검사 1994. 1996.
         부산고검 검사(법무연수원 대외교류협력단장) 2011.9.
  • K리그 . . . . 3회 일치
         시작은 5개 팀이었지만 어쨌거나 참가팀 수는 꾸준히 증가하였으며, 1994년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조직되고나서부터 KFA가 운영하던 때보다 좀 더 세심하게 "프로"리그를 구성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상당한 잡음이 생기긴 했으나 본격적인 지역연고정착에 대한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월드컵 유치와 관련하여 축구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기 시작한다. 또한 대우 로얄스와 성남 일화, 포항 스틸러스, 수원 삼성이 ACL의 전신인 아시아 클럽 챔피언쉽(ACC)를 돌아가며 제패하는 등, 아시아 최상위 리그임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수원 FC]]
  • 권재진 . . . . 3회 일치
         * [[1991년]] 수원지방검찰청 검사(고등검찰관)
         * [[1993년]]~[[1996년]] 수원지방검찰청 공안부 부장검사
         * [[1997년]]~[[1999년]] 사법연수원 교수
  • 김동건 (법조인) . . . . 3회 일치
         1946년에 [[경상북도]] 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 제1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975년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1997년 서울민사지방법원 1979년 [[대전지방법원]] 1981년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1982년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1985년에 댑덥원 재판연구관을 하다가 1987년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되었다. 1989년 사법연수원 교수 1992년 법원행정처 조사국장을 하였지만 1991년 서울형사지방법원, 1993년 대구고등법원, 1994년 대구지방법원, 1995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장으로서 재판을 심리하였다. 1997년에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하였으며 2000년에 제주지방법원장에 임명되어 2004년 2월 서울고등법원장이 되기 까지 수원지방법원, 서울지방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였다. 2005년 2월 서울고등법원장에서 물러난 이후 법무법인 바른 대표 변호사와 학교법인 영남학원 이사장, 참여불교재가연대 대표를 맡다가 2007년 11월에 임기 2년의 제11대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2009년 9월에는 제3기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을 하다가 2012년에 법무법인 바른 명예대표 변호사ㄱ, 천고법치문화재단 이사를 지내면서 2017년 2월에 법무법인 천우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다.
  • 김성민 (1991년) . . . . 3회 일치
          | 학력 = [[수원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 [[수원대학교]] 연극영화학과 (2009학번) 졸업 (학사)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9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수원대학교 동문]]
  • 김필곤 . . . . 3회 일치
         1963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4년 12월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6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육군 법무관을 전역한 이후 1988년 10월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 판사에 임용되어 [[대구지방법원]], [[수원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가정법원]] 등에서 판사를 했다.
         * 2004.년 2월 [[사법연수원]] 교수
  • 노재헌 . . . . 3회 일치
         |기타 이력 = [[민주자유당]] 상임위원 <br/> [[민주자유당]] 대구 동구을 지구당위원장 <br /> <br /> [[수원대학교]] 외래교수 <br /> [[강남대학교]] 외부강사
         *2000년 수원대학교 법학과 외래교수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소위]][[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강남대학교 교수]][[분류:수원대학교 교수]][[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조지타운 대학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노태우 가]][[분류:교하 노씨]]
  • 박성배 . . . . 3회 일치
         |클럽=[[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현대 다이노스]]<br />[[광주 상무 불사조]] <small>(군 복무)</small><br />[[FC 서울]]<br />→ [[부산 아이파크]] <small>(임대)</small><br />[[수원 삼성 블루윙즈]]<br />[[영하트 마나와투]]<br />[[이스턴 서버브스 AFC|이스턴 서버브스]]<br />[[용인시청 축구단|용인시청]]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현대 다이노스]]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하였고 2005년 [[FC 서울]]에 입단하였다. 하지만 바로 [[부산 아이파크]]로 임대를 갔고 그 후 2006년에는 정규 리그와 리그컵에는 전혀 출전하지 못하고 2군 리그인 [[R리그]]에서만 뛰다가 2007년 초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였다.<ref>[http://soccerlove.co.kr/news/news_detail.asp?idx=59399&cat=223&pg=141 재기 노리는 박성배-정광민 '팀공격력 내게 맡겨!]</ref>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청주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뉴질랜드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용인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이광훈 (축구선수) . . . . 3회 일치
         |클럽= [[포항 스틸러스]]<br />→ [[대전 시티즌]] (임대)<br />[[수원 FC]]<br /> [[강릉시청 축구단|강릉시청]]<br />[[청주 시티 FC]]
         [[2016년]] 포항 복귀 대신 [[수원 FC]]로 이적했지만, 부상 등의 이유로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였다.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FC의 축구 선수]][[분류:강릉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청주 시티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3년 FIFA U-20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천호선 . . . . 3회 일치
         |경력 = 국민참여당 상임위원 <br /> 통합진보당 전임위원 <br /> 정의당 최고위원<br /> 정의당 당대표 <br /> 정의당 교육연수원 원장
         |[[2014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7·30 재보궐선거]]||[[수원시 영통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경기 수원시 정)]]||19대||[[정의당 (대한민국)|정의당]]||-||-||-||사퇴
  • 최공웅 . . . . 3회 일치
         1980년에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1981년에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를 하다가 1982년에 사법연수원 교수를 하였으며 1983년에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민사부와 형사부를 번갈아 가며 재판장을 하다가 1985년에는 [[서울고등법원]]으로 전보되어 민사, 형사, 특별부 재판장을 하였다.
         * 1977년 ~ 1999년: [[사법연수원]], 서울대학교법학연구소 사법발전과정, 연세대학교법무대학원, 경희대학교국제대학원 강사 (국제사법, 국제소송, 특허소송)
         * 1981년 ~ 1983년: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 최성환 . . . . 3회 일치
         |클럽=[[대구 FC]]<br> [[수원 삼성 블루윙즈]]<br>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br> [[광주 FC]]<br> [[경남 FC]]
         {{2008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선수 명단}}
         [[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FC의 축구 선수]][[분류:경남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현규 . . . . 3회 일치
         * 서울 출생, 뒤에 수원시 영통동으로 이주하였다.
         * 2004년 2월 ~ 4월 4.15 국회의원 총선거 수원 영통에 [[한나라당]] 후보자로 출마하였으나, 낙선
         * [http://news.joins.com/article/322716 경기 수원영통 한나라당 한현규 후보]
  • K리그 관중 실 집계 정책 . . . . 2회 일치
         이게 성남만의 문제였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성남이 성적과 흥행이 거의 완벽하게 반비례곡선을 그려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빈도가 가장 많아 그렇지 다른 구단들도 경우의 차이는 있을 지 모르나 실 집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성남을 예시로 든 것 뿐이지만, 이는 서울이나 수원, 전북과 같은 당시 강호들도 껴안고 있는 문제였다. 자체적으로 실 관중 집계를 한다고 했으나, 엄밀성을 따졌을 때 정확한 집계라고 한다면 반드시 그렇다는 보장도 없었다.] 제일 큰 문제는 이 구단들이 집계하여 통보한 결과를 바탕으로 K리그 관중 수를 발표했다는 데 있다. 다음 기사와 같이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076&aid=0002051148|"허수가 많다"]는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이건 일부 구단이 아니라 전체적인 문제였다.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실 집계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링크한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겉으로는 실 검표를 한다고 했으나 모든 경기를 실 집계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 실 집계에 대한 시행기준도 구단마다 제각각이라 통일성조차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잘못된 자료가 나올 가능성이 지극히 높고, 또 이런 자료를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니 구단의 어떠한 활동이나 연맹의 정책이 제대로 나타나고 있을 지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지표인 "관중 수"에 대한 신뢰성은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이었다.
         특히 무료티켓을 어느 정도 뿌렸는지 팬들이 어림으로나마 짐작이 가능할 수 있었기에 팬들이 구단에게 공평함과 내실을 요구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평가로 자리매김했다. 2016시즌 기준, 수원 삼성의 경우는 무료티켓을 거의 발행하고 있지 않아 실제 관객수 당 지불비용이 가장 높은 "객단가"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는 오히려 평균관중이 줄었음에도 입장 수익이 올라가는 대표적인 신기한 사례로 남을 수 있었다.[* 무료티켓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연맹의 요청으로 군경활동의 사기진작 차원에서 구단은 무료티켓을 발행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각 연고지에서 지원하는 유소년 클럽의 경험 향상차원에서도 매 경기마다 무료티켓을 일정 이상 발행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 거의 각 구단마다 경기당 최소한 수백장 정도 무료티켓을 발행할 수 밖에 없다. 팬들도 이런 구단의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해명이 있을 경우에는 큰 문제 없이 수긍하고 가는 편이다.]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 . . . 2회 일치
         2015시즌도 리그 3위였던 [[수원 FC]]가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가 되어 2016시즌에 클래식에 안착하는 등, 2위팀이 승강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하는 안습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2015시즌 2위였던 대구는 마지막 한 경기를 놓치면서 상주 상무에게 1위자리를 놓치며 2위로 내려왔는데 대구는 수원에게 처참하게 패배하면서 자동승격권을 놓친것과 더불어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자격마저 놓치는 등 2위 징크스를 K리그 팬들에게 널리 알리는 안타까운 사례로 남게 되었다.
  • 강원도 . . . . 2회 일치
         2016년 현재 강원도 내 지방자치단체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스포츠 팀으로는 [[K리그]]의 [[강원 FC]][* 메인 연고지는 [[강릉시]]이며 가끔 [[춘천시|춘천]]과 [[원주종합운동장|원주]]는 물론 [[알펜시아 리조트|평창]]에서도 홈경기를 치른다.]와 [[한국프로농구]]의 [[원주 DB 프로미]] 등이 있다. [[KBO 리그]]의 경우 과거 [[삼청태현|인천광역시를 제1연고지로 삼았던 팀들]]의 광역연고권에 강원도가 포함된 적이 있고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수원야구장]]이 세워지기 전인 1980년대 초·중반에는 [[삼청태현|삼미, 청보, 태평양]]의 홈경기가 춘천야구장에서 분산 개최된 적도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1982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치른 공식 홈경기 장소도 [[숭의야구장|인천]]이 아닌 춘천이다. 물론 이 때는 [[숭의야구장]]이 공사 중이어서 춘천에서 경기를 연 것이다. 이 때 야구 경기가 열렸던 춘천야구장은 철거되었고 [[의암 야구장]]이 그 대체 성격으로 완공되었다.] 현재는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각각 영서지역 고등학교(강원고, 원주고)와 영동지역 고등학교(설악고, 강릉고)들을 대상으로 신인 1차 지명권을 갖고 있지만 홈경기 개최 권한과 신인 지명권 관할 지역은 엄연히 별개의 사안이다. [[WKBL]]에서는 [[아산 우리은행 위비|우리은행 농구단]]이 오랫동안 춘천 연고팀으로 있었지만 2016~2017 시즌부터 돌연 [[아산시]]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강원도 연고의 농구팀은 [[원주 DB 프로미]]만이 남게 됐다.
  • 경기도 . . . . 2회 일치
         [[2017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경기도의 각 시와 인구와 면적은 다음과 같다. 인구는 12,783,741명이고 남여비율은 1.01로 전반적인 [[성비|남초]] 지역이다. 시군별로는 [[포천시]] (1.11)와 [[연천군]] (1.11)가 가장 높고, [[시흥시]] (1.10), [[화성시]] (1.07),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1.06), [[오산시]] (1.06), [[안산시]] (1.05), [[안성시]] (1.05), [[가평군]] (1.05), [[이천시]] (1.04), [[안성시]] (1.04), [[양주시]] (1.03), [[파주시]] (1.03), [[양평군]] (1.02), [[여주시]] (1.02), [[수원시]] (1.01), [[하남시]] (1.01), [[김포시]] (1.01), [[남양주시]] (1.00), [[부천시]] (1.00), [[의왕시]] (1.00), [[구리시]] (0.99), [[군포시]] (0.99), [[동두천시]] (0.99), [[안양시]] (0.99), [[용인시]] (0.99), [[광명시]] (0.98), [[성남시]] (0.98), [[고양시]] (0.97), [[의정부시]] (0.97), [[과천시]] (0.95) 순으로 높다.
         [[수원시]]''' || 전체 || 水原市 || 477,807 || 1,198,056 || 2.51 || 121.05
  • 구본길 . . . . 2회 일치
         ||<#FFD700> 금메달 ||<#ffffff> 2014 수원 ||<#ffffff> 팀 ||
         ||<#FFD700> 금메달 ||<#ffffff> 2014 수원 ||<#ffffff> 개인 ||
  • 권혁 . . . . 2회 일치
         2002년 연고구단 삼성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뒤 2년차였던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2003년 시즌 초부터 ~~덩치좋은 좌완파이어볼러 덕후 [[김응용|코감독]]의 눈에 들어~~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몇 차례 기회를 갖다가 9월 6일 수원 현대전에서 선발 등판해 5⅓이닝 1실점으로 프로 첫 '''선발승'''을 따냈는데,[* 프로 입단 후 첫 승은 2003년 8월 16일 불펜으로 등판해 거두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도 수원 현대전이었다.] 상대 선발투수는 '''선발 21연승 행진'''을 이어가던 [[정민태]]였다.[* 우연의 일치로 정민태와 권혁은 12년 뒤인 2015년부터 한화에서 선수-코치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04년에는 37경기 81이닝을 소화하면서 삼성 불펜의 한 축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해 9월 18일 두산전에서 156km/h의 구속을 찍으며 다시 주목을 받았지만, 시즌 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2005년 시즌은 등판하지 못했다. 2006년 후반 1군에 복귀한 뒤로부터 슬슬 완성형 투수로 자리잡는데, 선발보다는 계투진에 중심을 두는 [[선동열]] 감독의 방침에 따라 철벽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2007년 평균자책점 2.79, 7승 1패 19홀드로 중간계투요원으로 100탈삼진을 달성했다.
  • 김민수 (1992년)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5년]] [[4월 21일]]<br>[[수원야구장|수원]] 대 [[SK 와이번스|SK]]전 구원
  • 김성주(축구선수) . . . . 2회 일치
         5월 2일 [[수원 FC]]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61분에 이재안 선수와 교체되며 출전해서 76분에 김창욱선수가 보낸 패스를 받아 살짝 드리블 후 왼발로 감아찬
         5월 30일 [[수원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경기종료 직전 김창욱이 뺏어낸 공을 받아서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에게 쓰루패스 이를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가 받은후 개인기로 수비를 살짝 제치며 왼발슛, 김한원 선수가 따라갔지만 결국 득점에 성공하며 도움을 기록했고 팀은 2:0으로 승리하며 리그 3연승, 리그 3위를 달성했다.
  • 김쌍수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기업인]]. [[LG그룹]] 부회장[* LG에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부회장까지 올랐다. 이 때문에 윤종용, [[이학수]]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공부잘하는 [[엄친아]], [[엄친딸]]들이 자신의 우상이자 롤모델로 삼는 인물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기업 부회장 자리는 게임으로 따지면 파이널 스테이지까지 클리어한 것이다.], 前 [[한국전력공사]] 사장, 現 [[수원 KEPCO45]] 프로배구단 구단주. 졸업 고교는 [[성의고등학교]].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이다.
          * 수원 KEPCO45 프로배구단 구단주
  • 문창진 . . . . 2회 일치
         광양제철남초와 포항 스틸러스 유스클럽인 포철중학교, 포철공고를 졸업하였다. 광양제철남초 시절에는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과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SV 베르더 브레멘]]에서 훈련을 받았다. 국내 복귀 이후에는 포항 유스클럽에 진학하였으며 2010년 백록기 우승, 2011년 고교클럽챌린지에서 6골 4도움을 기록하여 팀이 우승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본인은 MVP를 수상하였다. 이러한 활약에 문창진은 대학 진학 대신, 우선지명을 통해 바로 프로로 직행했으며 이는 [[신광훈]] 이후로 2번째 사례가 되었다.[* 이때 같이 프로로 직행했던 동기로 이광훈, 문규현이 있으나 문규현은 2013 시즌 이후 방출당했고 이광훈은 2015 시즌 대전에 임대 갔다가 임대 종료 후 수원 FC로 이적했다.] 하지만 허리 디스크로 인해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기에 출장 경기 수는 많지 않다.
         이후 부상과 [[피지컬]] 문제로 고생하다가 [[신태용호]]의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두각을 보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8월 동아시아 대회에 젊은선수들과 올림픽 대표 위주로 선발하겠다고 밝혀 선발이 유력해 보였지만, 부상 때문에[* 올대의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갈비뼈 부상을 입고 귀국했다.] 예비 엔트리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수원 소년가장 [[권창훈|빵훈이]]가 슈틸리케호에서 날아다니는 걸 생각하면 [[김승대|소속팀]] [[신화용|선배들처럼]] [[손준호|벌써부터]] [[이명주|국대 운이 안 좋다.]]
  • 박철우(배구) . . . . 2회 일치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지만, 준결승 [[일본]]전에서 패해 '''결국 군대 확정....''' 2014년 10월 23일로 입소일이 찍힌 입대 영장이 아시안 게임 이후 통지됐다고 한다. 삼성화재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그런데 행정절차 때문에 입소일이 [[2014년]] [[11월 27일]]로 연기된 상태. 이유인즉슨 박철우가 오프 시즌 동안 주소지를 팀 숙소와 전용 체육관이 있는 [[경기도]] [[용인시]] 근처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주소지 변경 때문에 관할 병무청이 변경되어 박철우의 입소 날짜를 다시 세팅하게 되었으며, 일과를 마치고 팀 훈련장에서 훈련하기 위한 취지로 추측된다. 2014년 11월 20일 대전 홈 경기를 끝으로 입대했다. 이후 기초 훈련을 마치고 [[수원시|수원]] [[권선구|권선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 중이다.
  • 백기만 . . . . 2회 일치
         '''백기만'''(白基萬, [[1902년]] [[5월 12일]] ~ [[1966년]] [[8월 7일]])은 [[대한민국]]의 [[시 (문학)|시인]], [[문학 평론|문학평론가]]이다. 본관은 [[수원 백씨|수원(水原)]]이고 [[호 (이름)|아호(雅號)]]는 목우(牧牛), 흰곰이며 [[필명|필명(筆名)]]은 '''백웅'''(白熊)이다.
  • 안지만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3년]] [[4월 15일]] <br /> [[수원야구장|수원]] 대 [[현대 유니콘스|현대]]전
  • 연초아 . . . . 2회 일치
         * [[수원대학교]] 무용과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수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이인 . . . . 2회 일치
         이후 [[장택상]] 등과 고학생의 상조(相助)기관인 갈돕회를 조직했다. [[1925년]]에는 갈돕회의 총재를 맡고 여자고학생상조회를 조직하는데 도움을 주어 고학생을 돕는 한편, [[조선어연구회]]의 [[조선어사전편찬회]] 발기위원이 되어 사전편찬사업을 적극 지원했다. [[1927년]] [[신간회]]의 창립과 더불어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신간회]]의 해소론이 제기되자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만의 민족단체를 조직할 것을 주장했다. [[1930년]] 수원고등농림학교 학생들의 흥농사(興農社) 사건을 변호하다 [[재판정|법정]]에서 일본의 학정(虐政)을 비난하여 법정불온변론 혐의로 6개월 동안 [[변호사]] 자격정지 및 정직처분을 받았다. 같은 해 [[조선물산장려회]] 회장이 되었다. 1931년에는 조선변호사협회 회장이 되었고, 1935년에는 [[이우식]](李祐植)·[[김양수]](金良洙) 등과 함께 조선어사전 편찬을 위한 비밀후원회를 조직하여 재정지원을 했다.
         * 수원농림학교 학생사건으로 법정에서 불온한 변론을 해서 6개월의 정직처분 받음
  • 임은정(법조인) . . . . 2회 일치
         [[1974년]] 7월 14일 생으로,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부산]]에서 성장하여,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2001년]] 제30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인천지방검찰청 검사로 검찰생활을 시작하였다.
          * 2001 제30기 [[사법연수원]] 수료
  • 전민수 . . . . 2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8년]] [[9월 5일]]<br>[[수원야구장|수원]] 대 [[LG 트윈스|LG]]전 대타
  • 전희숙 . . . . 2회 일치
         {{금메달|[[2014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4 수원]]|플뢰레 단체전}}
         {{은메달|[[2014년 아시아 펜싱 선수권 대회|2014 수원]]|플뢰레 개인전}}
  • 정몽헌 . . . . 2회 일치
         * 1977년 2월~1981년 현대건설 이사
         * 1996년 현대그룹 부회장,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 현대상선 대표이사 회장
  • 정성곤 . . . . 2회 일치
         |첫 출장 =[[KBO (야구)|KBO]] / [[2015년]] [[4월 14일]] <br /> [[수원야구장|수원]] 대 [[두산 베어스|두산]]전 구원
  • 정웅인 . . . . 2회 일치
         |align="center"|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외 대구, 부산, <br >화성, 수원, 안산, 성남, 이천, 안양, 제주, 동해 공연
         |align="center"|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 외 수원, 대구, 대전, 부산 공연
  • 정채진 . . . . 2회 일치
         * 1979 : 내무부 지방행정연수원
         * 1989 :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 조무근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5년]] [[5월 2일]] <br /> [[수원야구장|수원]] 대 [[NC 다이노스|NC]]전 구원
  • 조응천 . . . . 2회 일치
         || '''약력''' ||<(> 대전지방검찰청 검사[br]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br][[국민의 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br]부산고등검찰청 검사[br]수원지방검찰청 부장검사[br][[국가정보원장]] 특별보좌관[br][[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br][[박근혜정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br]~~별주부짱 매니저~~[* 공직을 맡은 것이 아니라 취소선을 쳤지만, 이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공직기강비서관에서 잘린 뒤에 그는 아내와 같이 해물전문점을 운영했었기 때문이다. 즉, 당선될 당시 그는 자영업자였다. 이는 그의 총선 포스터에도 당당하게 적어 놓은 약력이다.][br][[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사법연수원]] 18기로 수료 후 [[대한민국 해군]] [[군법무관]]으로 병역을 이수하고 1992년부터 [[검사(법조인)|검사]]로 근무를 시작해 같은 해 [[박지만]]의 마약 수사를 맡았다.
  • 조해현 . . . . 2회 일치
         1960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14기를 수료하고 1988년에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에 임용되어 서울민사지방법원,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대구지방법원]], [[대구고등법원]],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1998년에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내다가 2001년에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되었다. 이후 [[서울행정법원]], [[부산고등법원]], [[인천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에서 부장판사로 재판장을 하였으며 2014년 2월 법원 정기인사에서 [[대구지방법원]]장으로 승진해 제21대 대구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과 겸직하였다. 2년동안 법원장을 하다가 2016년 2월에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하였으나 2018년 2월에 대전고등법원장에 임명되었다.
  • 조현근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5년]] [[4월 22일]] <br /> [[수원야구장|수원]] 대 [[현대 유니콘스|현대]]전
  • 채형석 . . . . 2회 일치
         1985년 애경산업 감사로 애경그룹에 입사한 후 애경유지공업 대표이사, 애경백화점 수원점 대표이사, 에이알디홀딩스 대표이사, 애경백화점 평택점 대표이사, AK면세점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 1995년 5월 ~ 2003년 3월 수원 애경역사 대표이사
  • 최성준 (법조인) . . . . 2회 일치
         최성준은 1957년 7월 12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3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986년 9월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후 1989년 3월 서울형사지방법원 1990년 9월 제주지방법원 1992년 8월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를 거쳐 1994년 법원행정처 송무국 심의관으로 발령받았다가 1995년 3월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1998년에 특허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였다. 이후 2000년 2월 수원지방법원, 2002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부장판사를 계속하였으며 2005년 2월 특허법원 고등부장판사, 2006년 8월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 2007년 2월 서울고등법원 고등부장판사, 2010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수석부 부장판사를 하였으며 2009년 3월에는 2년 임기의 지적재산권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 최원태 . . . . 2회 일치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6년]] [[5월 27일]] <br/> [[수원야구장|수원]] 대 [[kt 위즈|kt]]전 구원
  • 최재웅 (배우) . . . . 2회 일치
         |경기도문화의 전당 대극장, 수원
         |경기도문화의 전당 대극장, 수원
  • 추성건 . . . . 2회 일치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1년]] [[10월 3일]] <br /> [[수원 kt 위즈 파크|수원]] 대 [[현대 유니콘스|현대]] 전
  • 표창원 . . . . 2회 일치
          *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지지자다. 경찰대에 부임한 이후로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팀을 찾다 수원 블루윙즈를 지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주간 서형욱에 2013년 3월 3일 출연해서 그냥 말로만 지지하는 게 아니라 진짜 지지자임을 보여줬다. 가끔씩 직관을 하러 빅버드에 온다고 한다.--그냥 시축 한번 해줬으면 좋겠다.--
  • 한상대 (검사) . . . . 2회 일치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13기 수료)
         * 수원지방검찰청 형사부장
  • 홍국영 . . . . 2회 일치
         원빈 사망 당일 정조는 자신의 서제 은언군 아들 완풍군을 원빈의 수원관으로 삼았다. 후일 홍국영이 이 완풍군을 "내 조카"라고 부르며 그를 통해 대계를 저지하려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나, 기록에 일관성이 없어 완전히 신뢰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이 완풍군(完豊君) 준(濬)은 홍국영의 몰락 후, 상계군(常溪君) 담(湛)으로 개명(改名) 개봉(改封)되며 왕실 세력들의 견제를 받았으며, 결국 5년 후인 정조10년([[1786년]])에 생을 마감했다.
         홍국영의 몰락에 대해서는 각종 설만 난무할 뿐,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탄핵의 포문을 연 김종수의 상소에서 언급된 공식적인 탄핵 사유는 '후궁 간택을 막았다'라는 것이었다. 또한 (원빈의 수원관)완풍군을 정조의 양자로 들여 동궁으로 삼으려 했다는 가동궁 사건설도 몇몇 군데에서 언급된다. 정조7년 문양해 반란사건 당시 '왕비의 목숨을 위협했다'라는 기록도 있고,《정종대왕묘지문》에는 홍국영이 [[은전군 이찬]]([[조선 정조|정조]]의 이복 아우)을 죽게해서 몰락했다고 정조가 원망했다는 기록도 있다. 속설 중에 홍국영이 완풍군을 원빈의 양자로 삼았다거나, 효의왕후 김씨의 음식에 독약을 넣었던 것이 발각되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이는 19~20세기에나 등장한 야사로 짐작된다.
  • 황두성 . . . . 2회 일치
         [[2007년]] 시즌에는 처음에 불펜에서 활약하다가 6월 즈음에 [[현대 유니콘스]] 선발진들이 난조를 보이자, 선발로 전환하여 활약한다. [[2007년]] [[10월 5일]] [[현대 유니콘스]]의 홈 고별전인 [[수원야구장|수원]] 한화전 9회 초에 등판하여 세이브를 거두었으며 그 세이브가 [[2007년]]의 유일한 세이브였다. 은퇴했을 때 그는 [[현대 유니콘스]]의 고별 경기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6064 '은퇴' 황두성, "현대 마지막 경기 잊을 수 없다"] - OSEN</ref> 이 해 그는 4.45 방어율에 7승 9패 1세이브를 기록하였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1회 일치
         실제로 부산 아이파크가 주세종, 이정협, 이범영 등 각 포지션의 주요 선수를 팔아버릴 수 밖에 없어서 언제 다시 올라올지 희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반대로 수원 FC는 승격 이래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2016시즌 클래식 리그 개막 이후 4경기 무패행진을 이루면서 제대로 된 전성기를 맞이하는 등 K리그의 역사가 되는 계기를 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맞았다.
  • K리그 챌린지 . . . . 1회 일치
         특히 축구에 대해 한이 많은 부천, 안양을 중심으로 프로화를 진행 및 시민구단이 창설되고, 또 수원 FC나 충주 험멜과 같이 기존 [[내셔널리그]] 팀들이나 [[R리그]]에 참가했던 경찰청 축구구단들이 기준을 충족하면서 2013시즌부터 챌린지에 참가할 6개 팀이 탄생하게 된다. 여기에 2012시즌 K리그에서 강등된 광주와 상주가 챌린지에 합류하며 2013시즌을 원년으로 K리그 챌린지가 시작된다.
  • head to head . . . . 1회 일치
         이 규정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대회이며, 매 시즌마다 이 규정 때문에 희비가 엇갈리는 팀이 꼭 생길 정도로 대회의 흥행을 좌우하는 요소로 자리잡았다. 2016시즌만 봐도 A조의 [[알 이티하드]], G조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각조 2위에 비해 골득실이 높았지만 이 원칙에 의해 순위에 밀려나는 상황을 맞이하였다.
  • 강연재 . . . . 1회 일치
         * [[2005년]] : 제34회 사법연수원 수료
  • 곽상도 . . . . 1회 일치
         * [[2002년]] : [[수원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 부장
  • 구명환 . . . . 1회 일치
         2018년 4월 19일 [[수원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즈]]-[[kt 위즈]]전에서 주심을 맡았을 때 경기 중 일부 타자들이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을 나타냈고, 판정을 비판하는 여론이 있었다.<ref>{{뉴스 인용|제목=4월 19일 비교적 정확했던 구명환 심판…어떻게 `괴물`이 됐나|url=http://sports.mk.co.kr/view.php?year=2018&no=265344|날짜=2018-04-26|출판사=매일경제|확인날짜=2018-04-30}}</ref>
  • 궁예 . . . . 1회 일치
         명주의 성주 김순식도 왕건이 즉위한 뒤로도 오랫동안 항복하지 않아, 왕건이 천수 4년(922년) 7월에 김순식의 아버지로 승려로서 출가해 있던 허월(許越)을 보내 타일렀을 때에도 장자 수원(守元)만 보내고 자신은 오지 않았다. 천수 9년([[927년]]) 8월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들 장명(長命)만을 보내어 숙위하게 했을 뿐 김순식 자신은 오지 않다가, 이듬해 1월에야 직접 왕건을 찾아와 알현함으로서 완전히 왕건에게 귀부하게 되었다.
  • 김강민 . . . . 1회 일치
         3월 19일 수원 kt전에서 슬라이딩을 하다가 왼쪽 무릎 인대가 부분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약 두달정도 결장이 예상되고 있다. FA 계약이후 첫 시즌인데 시작부터 좋지않은 상황. 팬들은 물론 본인도 상당히 아쉬워 하고 있다.
  • 김기창 (법학자) . . . . 1회 일치
         [[1981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1985년]]에 학사 학위하였고, 그 후 1985년 9월부터 1986년 6월까지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에 재학하여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88년 3월에 제19기로 [[사법 연수원]]에 입소하였으며, 1990년 3월부터 9월까지 세방 종합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재직하였다. 1990년 10월부터 1994년 7월까지 [[캠브리지 대학교]] 퀸즈 컬리지에 재학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4년 10월부터 1997년 9까지 [[캠브리지 대학교]] 퀸즈 컬리지에서 전임 연구 교원으로, 1997년 10월부터 2002년 9월까지 캠브리지 대학교 셀윈 컬리지에서 전임 강사로, 2000년 10월부터 2002년 9월까지 캠브리지 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노튼로즈 기금 교수로 재직하였다. 2003년 3월부터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자유전공학부 학부장을 역임하였다.
  • 김대휘 . . . . 1회 일치
         1956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74년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7년 제1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제10기 [[사법연수원]]과 해군 법무관을 마치고 1983년에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 김덕현 (변호사) . . . . 1회 일치
         *1983.08. 제13기 사법연수원 수료
  • 김륵 . . . . 1회 일치
         1594년(선조 27)에는 사헌부 대사헌·이조 참판·홍문관 부제학 등 요직을 역임했으며, 1595년(선조 28) 부체찰사(副體察使)에 올라 수원·전주·남원·거창·진주·대구·창녕 등지를 순시하며 군졸들을 위무하고 전황을 살폈다. 이때 [[한산도]]와 [[거제도]]에 파견되어 [[이순신]]을 비롯한 수군의 활약상을 조사, 조정에 보고하고 이들의 전공을 위무하였다. 이후 진주에 가서 이순신을 만나 찾아가 대책과 전략을 상의하고 숨져간 병사들의 위령제를 지냈다.
  • 김선궁 . . . . 1회 일치
         남아있는 기록들을 보면 김선궁의 행적에 대해 가장 믿을 수 있는 부분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지금의 구미 선산면인 일선 지역의 아전이었고 일리천 전투 때에 고려군에 가담해 후백제와 싸워서 공을 세웠다는 것이고 그래도 조선 시대까지 '''선산 지역에서 김씨 성을 쓰는 관리나 아전은 거의가 자신을 김선궁의 후손이라고 자처했다'''는 《이존록》의 언급을 보면 선산에서 나름 끝발 날렸던 인물이었음은 틀림없다. 조선 시대 [[김성일]]의 차자[* 왕에게 올린 보고서.]에는 축성이 지나치게 폐단이 되고 있다고 하면서 "안열(安悅)이 도둑을 물리친 것은 수주(水州)에서였으며,[* 안열은 고려 원종(元宗) 때 수주(수원)부사를 지냈고 원종 12년(1271년)에 대부도(大阜島) 주민들이 섬에 주둔하던 몽골군을 죽이고 삼별초에 호응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를 진압했다.] 김선궁이 적을 이긴 것은 안성(安城)에서였는데 여기에 무슨 웅거할 만한 산천이나 성곽이 있었습니까?"라고 말하고 있다.[* 해당 차자는 김성일의 문집인 《학봉전집》권3에 실려 있고, 내용은 [[니탕개의 난]](1583년) 이후에 조정에서 너무 무관을 많이 등용하는데 자질도 안 살피고 관리 임용 순서도 안 가리고 관직을 막 준다고, 그러면서 성곽을 짓는다고 백성을 너무 괴롭히는 거 아니냐는 것이 요지이다.~~하지만 [[임진왜란|9년 뒤에...]] ~~] 김성일이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 안성이 어디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성곽이 없어도 옛날에는 잘만 이겼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례로써 김선궁을 언급한 것을 보면, 군사적인 재능도 어느 정도는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 김수학 (법조인) . . . . 1회 일치
         1954년 3월 17일에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난 김수학은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에 치러진 제1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9기를 수료했다.
  • 김찬돈 . . . . 1회 일치
         1959년에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능인고등학교]]와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여 판사에 임용되었다. 1990년 [[대구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를 하다가 2000년 2월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2004년 2월에 부장판사에 승진하여 [[대구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 [[대구고등법원]], [[부산고등법원]]에서 재판장을 하다가 법원장으로 승진하였다.
  • 대한민국 망명정부 야마구치 현 설치계획 . . . . 1회 일치
         [[6.25 전쟁]]이 발발하고 이틀 뒤, 1950년 6월 27일 오전 2시, 이승만은 [[대전]]으로 피신했다. 2시간 뒤인 오전 4시에 이승만은 [[수원]]으로 천도할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존 무치오 주한미국 대사에게 "일본에 망명정부를 세울 수 있겠느냐?"고 문의했다. 이후 6월 28일 서울이 완전히 함락된다.
  • 박신혜 . . . . 1회 일치
         박신혜는 2014년 11월부터 방영 된 드라마 《[[피노키오 (드라마)|피노키오]]》에 캐스팅 되어 《[[천국의 나무]]》 PD였던 조수원 감독과 9년만에 재회하게 됐다.<ref>{{뉴스 인용 |제목 ='피노키오' 박신혜 "작품 기다리는 배우, 취준생의 심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404814|출판사 =엑스포츠뉴스 |저자 =김승현 |날짜 = 2014-11-06 |확인날짜 =2014-11-10 }}</ref> 이 작품은 방송국 사회부 기자들의 삶과 24시간을 함께 하며 전쟁같이 보내는 이들이 설레는 관계로 발전해가는 풋풋한 청춘을 그린 드라마로 박신혜는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가상의 증후군인 '피노키오 증후군'을 앓고 있는 최인하 역을 연기하였고, 실제 사회부 기자들의 실상이나 문화를 현실적으로 잘 반영해 호평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www.koreaherald.com/view.php?ud=20140904000373|title=Park Shin-hye confirmed to star in ‘Pinocchio’|publisher=The Korea Herald|accessdate=2014-09-08}}</ref><ref>{{웹 인용|title=Cultural Exports to Surpass 1 Trillion Won This Year|url=http://www.businesskorea.co.kr/english/news/lifestyle/8231-culture-trade-balance-cultural-exports-surpass-1-trillion-won-year|work=Business Korea|accessdate=2015-10-24|date=2014-12-26}}</ref><ref>{{웹 인용|title=‘Pinocchio’ sells distribution rights to China for record price|url=http://kpopherald.koreaherald.com/view.php?ud=201411241750324868840_2|work=Kpop Herald|accessdate=2015-10-24|date=2014-11-24}}</ref> 박신혜는 [[SBS 연기대상]] 중편드라마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과 베스트 커플상, 10대스타상 3관왕을 수상했다. 또한 제5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연속 인기상을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5년 연속 인기상 수상…대세 여배우 입증 [51th 백상]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612085|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이은지 |날짜 = 2015-05-26 |확인날짜 =2017-09-20 }}</ref> 같은 해 12월, 개봉 된 사극 영화 《[[상의원]]》에 왕비 역을 연기하였다.
  • 박재정(배우) . . . . 1회 일치
         특히 발음 쪽이 아주 심각해서 결국 작중에서 [[분가]]를 붕가로, 그것도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나 잘못 발음하면서 "'''저랑 새벼씨 붕가하겠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붕가붕가]]하나보다'''" 라는 희대의 [[명대사]]를 탄생시켰다.[* 사실 '분가' 를 '붕가' 라고 읽는 것은 표준 발음법에 따른 건 아니지만 한국어의 자음동화 현상에 따른 자연스런 발음이다. 문제는 [[붕가]]라는 말이 주는 코믹함과 정확한 대사 구사력을 가져야할 연기자가 이런 발음을 했다는 것. 실제 발음이 좋은 배우 및 성우, 아나운서 등은 분가와 붕가의 발음을 변별력 있게 구사한다.] ~~이 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5년 후, 이보다 더한 [[장수원|로봇 하나]]가 나타날 줄은...~~
  • 박주영 . . . . 1회 일치
         ||<:> 2011년 10월 11일||<:> [[수원시]]||[[파일:아랍 에미리트 국기.png|width=30]] [[UAE]]||<:> 2–1||<:>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예선||
  • 박진성(시인) . . . . 1회 일치
         >작가회의 상임고문 직을 내려놓을 것이 아니라 수원시에서 본향으로 귀가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해야 합니다. 고은 시인에 대한 증언은 정말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는 이 세계의 왕이자 불가침의 영역이자 신성 그 자체였습니다.
  • 백낙청 . . . . 1회 일치
         [[분류:193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브라운 대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신민당]][[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수원 백씨]]
  • 백상원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수원 백씨]][[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백성현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수원 백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코드 - 비밀의 방 참가자]][[분류:싸이더스HQ 소속]]
  • 백승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수원 백씨]]
  • 백일섭 . . . . 1회 일치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6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창극 배우]][[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수원 백씨]][[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서울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연극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인]]
  • 백정현 . . . . 1회 일치
         3월 31일 [[수원 kt 위즈 파크]]에서 열린 [[kt wiz]]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였다. 3회까지 1실점으로 잘 막았지만 4회부터 제구가 흔들렸고, 2점을 더 내주고 1사 만루 상황에서 강판되었다. 3과 ⅓이닝 동안 4피안타 5사사구 5탈삼진 5실점을 기록하였다.
  • 백진희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2008년 데뷔]][[분류:부산광역시 출신]][[분류:수원 백씨]][[분류:백상예술대상 수상자]]
  •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수원시 출신 인물]]
  • 서거정 . . . . 1회 일치
         *** 형수 : 수원 백씨
  • 서석구 . . . . 1회 일치
         [[계성고등학교 (대구)|계성고등학교]] 졸업을 거쳐 [[경북대학교]] 법학과를 학사 학위하였으며 [[1971년]] 제13회 [[사법시험 (대한민국)|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3기 과정을 수료한 이후에는 [[대구지방법원]], [[광주지방법원]],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부산지방법원]],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판사로 재직했고 [[1981년]]부터 1982년까지 [[부림 사건]]의 주심 판사를 맡았다.
  • 손승락 . . . . 1회 일치
         2016년 7월 29일 수원 [[KT 위즈|kt]] 원정 당시 연패 중이던 팀 분위기를 무시하고 [[윤길현]]과 새벽까지 나가 놀았던 것을 같은 숙소에 자리잡은 팬이 보았고, 심지어 그 팬과 배달 음식 때문에 실랑이를 벌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선수가 시킨 음식과 팬이 시킨 음식 둘 다 1층 로비에 있었는데 손승락과 윤길현이 팬의 음식을 자신의 것으로 잘못 알고 들고 갔고, 팬이 이를 알리자 "우리 층으로 오라"라는 적반하장식의 반응을 보였던데다 이후 내려와서도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것.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giants_new1&no=3703421&page=1&exception_mode=recommend|당시 썰]]. 당시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어 신빙성이 매우 높은 썰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팬들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giants_new1&no=3703613&page=1&exception_mode=recommend|500원 듀오]]라고 부르며[* 팬이 시킨 음식은 4만 500원 짜리였고 자신들이 시킨 음식은 4만 원 짜리여서 500원 더 냈다는 말을 팬에게 수 차례 했다고 한다.] 매우 큰 실망을 안겼다. 이는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81&aid=0002743161|족발 게이트]]로 회자되고 있다.
  • 송정현 . . . . 1회 일치
         [[1999년]] [[경북 드래곤즈]]에 입단하였으나, 그 해 발목 부상을 입어 재활 치료를 받다가 [[2000년]] 복귀하였다. 하지만 [[2001년]] 다리 부상을 입어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되었고, 이후 1년 간 무적 신분으로 지내다 [[2003년]] 당시 신생 팀이자 연고 팀인 [[대구 FC]]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였다. [[2006년]] 친정 팀 [[전남 드래곤즈]]로 복귀하여,<ref>[http://www.dragons.co.kr/news/news.asp?mode=view&category=&boardcode=tb_board_news&idx=6157 송정현, 진순진 영입]</ref> [[200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였고,<ref>[http://www.segye.com/Articles/Spn/Sports/Article.asp?aid=20061203000144&cid=0101110300000&dataid=200612031710000231 전남, 9년 만에 FA컵 품었다…송정현·김태수 연속골]</ref> [[2007년]] [[포항 스틸러스]]와 결승전에서 2골을 기록하는 등<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12021657372235 '혼자 2골' 송정현, FA컵 2연패 가능케 한 전남의 영웅 ]</ref> [[FA컵 (대한민국)|FA컵]] 2연패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9년]] [[FA]]로 풀린 송정현은 [[울산 현대 호랑이]]로 이적하였으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3221500532234 울산, FA 송정현 긴급 수혈…전반기 단발 계약]</ref>
  • 송진현 . . . . 1회 일치
         1952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제18회 사법시험 합격해 제8기 [[사법연수원]]을 수료, 공군 법무관을 전역했다.
  • 안갑준 . . . . 1회 일치
         국민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후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경찰전문학교 교장, 충청북도경찰국장(현 충청북도[[지방경찰청장]]),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연수원 원장, 경기도 부지사, 충청북도 부지사, 충청남도 부지사, 전라북도 부지사, 전라남도 부지사 등을 역임하였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 . . . . 1회 일치
         데보라 "도비" 카터가 뉴욕 북부에 일어난 사건의 책임자를 알아냈다. 애국자들도, 영국군도 아닌 누군가가 모든것을 사들인 후 아찔할 정도로 비싼 값에 되팔고 있는 것. 책임자는 주 수원지 근처에 요새화된 캠프를 차리고 있었다. 코너가 그 곳에 어떻게 진입할지 묻자, 도비는 지역 사람 몇몇을 데려왔다고 한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1회 일치
         코너가 윌리엄 존슨을 찾는다는걸 알게 된 애덤스는 코너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데려가려 한다. 길을 가는 도중 애덤스가 "드디어 사람들이 불의에 맞서는걸 보니 기쁘군"이라는 말을 하자 코너는 "노예를 가진 사람이 하는 말이라곤"이라며 애덤스를 까버린다. 애덤스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서리는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둘은 식민지인의 노예제에 대한 갑을론박을 하던 도중 세금 징수원이 왕당파 병사들을 대동하고 세금 징수를 거부하는 집을 공격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마침 식민지인의 권리 문제가 더 심각하니 그것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애덤스는 증거가 충분할 정도로 늘어났다는 대사를 치지만 코너는 애덤스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는 집주인의 편을 들어 병사들을 공격한다. 병사들을 처리하고 난 후, 코너는 집주인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지만 집주인은 한두번 있는 일도 아니라고하고 감사를 표한 후 가버린다.
  • 영주시 . . . . 1회 일치
         북부로 [[소백산]]을 끼고 있어서 북쪽은 지형이 험한 편이지만 중부와 남부는 평탄한 침식 구릉지대로 높은 산은 많이 없는 편. 다른 경북 지역과 마찬가지로 논밭만큼이나 과수원이 많다. 특히 시골길엔 [[사과]] 농장이 정말 많다. 기후의 온난화로 [[대구광역시]] 등 경북 남부 지역에서 사과 주산지가 경북 북부로 올라온 덕에 이 지역 사과가 유명해지고 있다. ~~이제 이마저도 머지않아 [[강원도]]•[[경기도]]•[[황해도]] 쪽으로도 올라갈 듯.~~. 이미 영주에서 심은 묘목들이 철원이나 영월로 판매되고 있다.
  • 우규민 . . . . 1회 일치
         5월 10일 선발 보니야가 8회말 흔들리자 구원등판했으나 분식을 하며 블론세이브를 시전했다. 팀은 믿었던 장필준마저 블론을 저지른 끝에 연장 11회말 끝내기 안타로 패해 15년만의 수원에서의 스윕 시리즈 달성에 실패했다.
  • 육홍균 . . . . 1회 일치
         1900년 [[경상북도]] [[선산]][[군(행정구역)|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를 졸업하고 [[일본]] 니혼 대학 문과를 수료하였다.
  • 윤길현 . . . . 1회 일치
         2016년 7월 29일 수원 kt 원정 당시 연패중이던 팀 분위기를 무시하고 [[손승락]]과 새벽까지 나가 논게 같은 숙소에 자리잡은 팬이 보았고, 심지어 그 팬과 배달 음식 때문에 실랑이를 벌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선수가 시킨 음식(족발세트)과 팬이 시킨 음식(통삼겹살과 냉면) 둘다 1층 로비에 있었는데 손승락과 윤길현이 팬의 음식을 자신의 것으로 잘못 알고 들고갔고, 팬이 이를 알리자 "알아서 환불하라", "바꾸려면 우리 방 쪽으로 오라"[* 그나마 알아들은게 이 정도지, 실제로는 통화를 여러 차례하며 꽤 얘기한 내용이 있었다고 하는데 술 취한 느낌의 경상도 사투리로 계속 횡설수설해서 --사실 이 정도면 그냥 주정부린건데-- 대부분 못 알아들었다고 한다.]라는 적반하장식의 반응을 보였던 데다 이후 내려와서도[* 처음에는 팬과 그의 여자친구가 그 방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 층은 9층이라 그 층의 카드가 있어야만 엘리베이터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건물 구조가 못 가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가란 말이야-- 그러자 호텔 직원에게 중재하여 그들을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호텔 직원이 부르자 그제서야 나온 듯. 그리고 팬은 그게 손승락과 윤길현인 것도 직접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통화로는 그냥 경상도 남자들이 술에 취해 좀 무례하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것.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giants_new1&no=3703421&page=1&exception_mode=recommend|당시 썰]]에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어 신빙성이 매우 높은 썰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팬들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giants_new1&no=3703613&page=1&exception_mode=recommend|500원 듀오]]라고 부르며[* 팬이 시킨 음식은 4만 500원 짜리였고 자신들이 시킨 음식은 4만원 짜리였는데 자신들이 팬의 음식을 계산해서 500원 더냈다는 말을 팬에게 수차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500원 문제가 무의미한게 팬은 바뀐 음식을 건드리지 않고 돌려줬고 먼저 가져간 선수들은 이미 음식 포장을 다 뜯어놓고 나서 들고 와서 비닐 봉지 안에 음식국물(삼겹살과 함께 시킨 냉면)이 엉망으로 흘러나와 있었다고 한다. --500원어치만 흘렸나-- 실질적으로는 팬이 당연히 더 손해. ~~그리고 억대연봉 받는 분들이 치사하게 500원 가지고 뭐라 그러는 것부터가...~~] 매우 큰 실망을 하고 있다.
  • 이기광 (법조인) . . . . 1회 일치
         1955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대구고등학교]]와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15기를 수료했다. 1986년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판사에 임용되어 1987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1990년 [[대구지방법원]] 1996년 [[대구고등법원]] 1999년 [[대구지방법원]]에서 판사를 하다가 2001년에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2008년 [[대구고등법원]]을 거쳐 2011년까지 재판장을 하였으며 2012년에는 [[대구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에 임명되어 2015년 2월까지 보임하였다. [[대구고등법원]]에서 수석부장판사에 임명된 2012년 2월에 경상북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으며 2015년에는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1년동안 재판장을 하였다. 2016년 2월 법원 정기인사에서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2년동안 제18대 [[울산지방법원]]장에 임명되면서 제20대 울산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다. 울산지방법원장을 끝으로 30년이 넘는 공직자 생활을 마치면서 퇴임식에서 "아내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저를 뒷바라지하면서 삼남매를 훌륭히 키워 준 제 아내, 무등 한 번 태워 주지 못했고, 손잡고 봄길 한 번 함께 걸어 보지못했다."며 아쉬워했다.<ref>로이슈 2018년 2월 12일자</ref>
  • 이병후 . . . . 1회 일치
         경상북도 영천 출신으로 1957년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58년 12월 17일 대구지방법원 판사에 임명되어 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려고 야간에만 개표를 했던 대구병구 올빼미 개표사건, 팔공산에서 생포한 대남 간첩사건 등에서 배석판사로 심리하는 등<ref>동아일보 1959년 4월 4일자</ref><ref>동아일보 1958년 12월 17일자</ref>1961년 8월 27일 대구지방법원<ref>동아일보 1961년 8월 27일자 1964년 5월 19일자</ref> 1966년 11월 15일 대구고등법원 1967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1969년 3월 31일 서울고등법원 1969년 10월 7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원장 1971년 4월 1일 부산민사지방법원 1973년 3월 27일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형사지방법원, 성동지원장, 1974년 성북지원장을 거쳐 1976년 12월 29일 서울고등법원<ref>동아일보 1976년 12월 30일자</ref> 1977년 11월 5일 서울고등법원<ref>매일경제 1977년 11월5일자</ref> 1980년 영등포지원장 1981년 4월 20일 수원지방법원장<ref>매일경제 1981년 4월 21일자</ref> 1982년 3월 12일 대전지방법원장<ref>경향신문 1982년 3월12일자</ref> 1983년 8월 12일 인천지방법원장<ref>경향신문 1983년 8월 12일자</ref><ref>동아일보 1986년 4월 3일자 매일경제 1966년 11월 16일자 경향신문 1969년 3월 31일자 동아일보 1969년10월7일자 매일경제 1971년 3월 26일자 경향신문 1973년 3월 27일자</ref>을 거쳐 1986년 4월 16일에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다. 1987년 대법원이 상고허가 신청사건의 처리를 전담하는 상고허가신청부를 신설하면서 [[정기승]] [[황선당]]과 함께 전담 판사로 구성되었으며<ref>매일경제 1987년 1월 5일자</ref> 1987년 5월 18일에 대법원장 추천으로 [[헌법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ref>동아일보 1987년 5월 16일자 매일경제1986년4월3일자</ref>
  • 이장영 . . . . 1회 일치
         * 한국금융연수원 원장
  • 이중환(법조인) . . . . 1회 일치
         1959년 [[경상북도|경북]] [[구미시|구미]]에서 출생했으며 [[경북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 [[단국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15기(1986년)) 수료 후, 검사로 임용되어 2011년까지 근무하다 퇴직하고 변호사로 전직하였다. 이중환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 전라북도/인물 . . . . 1회 일치
         부안군 - [[강금원]] [[김형인(코미디언)|김형인]] [[방실이(가수)|방실이]] [[임현성]] [[지수원]] [[하태웅(가수)|하태웅]]
  • 절대가련 칠드런/458화 . . . . 1회 일치
          * 문제는 타니자키와 미나모토가 산 속에서 미아가 되어 버린다. 도시는 커녕 아직 산을 내려가지도 못하고 있다. 타니자키는 GPS를 사용하면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며 수원을 끼고 하산하는 방식을 썼는데 이게 잘못돼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 그들이 따라가던 강은 폭도로 이어져 길이 끊겨버린 것이다.
  • 정경식 . . . . 1회 일치
         1937년에 경상북도 고령에서 태어난 정경식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 송종의 전 대검 차장 등과 함께 제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박정희 정부]]와 [[5공화국]]에서 <신국가보안법>이라는 책을 저술할 정도로 공안검사로서 최고의 평가를 받다가 서울지검 공안부에서 재직하던 1979년 10월 27일에 [[10.26 사건]]으로 서울지검 특수부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파견되어<ref>경향신문 1979년 10월 27일자</ref> [[12.12 사태]]로 연행된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조사하는 등 [[5공화국]] 출범 때인 서울지검 특수2부장으로 있던 1980년 5월말 [[국보위]] 사회정화위원회에서 공무원을 정화하는 사회정화위원을 했다. 1983년 8월 12일에 서울지검 3차장 검사를 거쳐 부산지검장에 재직하던 1992년에는 지역감정 조장과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논란을 부른 [[초원복집 사건]]에 연루될 뿐만 아니라 대통령 선거 직후에 "송종의, 최명부 검사와 함께 [[민청학련 사건]]에서 가혹행위를 했다"며 "검찰 요직에 임명해서는 안된다"는 야당인 [[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의 주장<ref>매일경제 1993년 9월 18일자</ref>에 의해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전보되는 등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으나 서울지검 특수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청주지검장, 대구고검장 등을 역임하다 검찰 출신으로서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헌법재판관]]에 임명되었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07569.html]</ref>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1994년 9월 16일에 "유신체제 아래에서 공안검사로 있으면서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1979년 7월 23일 국회 본회의 발언을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에 게재한 민주전선 주간인 [[문부식]]<ref>동아일보 1979년 7월 31일자경향신문 1979년 7월 31일자 8월 18일자</ref>과 <어떤 조사>를 쓴 [[한승헌]] 변호사<ref>동아일보 1975년 8월 28일자</ref>, 우도 간첩 사건<ref>동아일보 1973년 7월 3일자</ref>, 교포학생 김승효, 삼천포 간첩단 사건, 예비역 장교 등에 의한 내란음모사건<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501310020920101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5-01-31&officeId=00020&pageNo=1&printNo=16410&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5년 1월 31일자</ref>, [[통일혁명당 사건]], [[남민전 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민주화운동]]과 인권회복을 위해 노력한 많은 시민과 학생을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구속하고 [[신군부]]의 국보위 산하 사회정화위원회에서 공무원을 정화하는 등의 민권억압을 한 전력이 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02000329201009&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10-20&officeId=00032&pageNo=1&printNo=13253&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8년 10월 20일자]</ref>며 "자진 사퇴하라"는 비판을 받았다.<ref>한겨레 1994년 9월 17일자 경향신문 1995년 11월 28일자</ref> [[박정희 정부]]에서 시국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구속자 가족들이 정경식 검사를 향해 야유를 보내면 검사석에서 벌떡 일어나 매서운 눈초리로 방청석을 노려보곤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61400289105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3-06-14&officeId=00028&pageNo=5&printNo=1589&publishType=00010 한겨레 1993년 6월 14일자]</ref> 1999년 2월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전년 대비 "8천902만원이 늘었다"고 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418788]</ref> 1980년 [[5·16민족상]] 안전보장 부문 후보자로 선정됐다.<ref>동아일보 1980년 5월 9일자</ref>
  • 정동기 . . . . 1회 일치
         * 1976년 : 제18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8기 수료)
  • 정몽규 . . . . 1회 일치
         HDC현대산업개발은 1976년 설립된 [[종합부동산인프라기업]]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단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약 40만여 세대의 주택을 공급했고, 대표사업지로는 ‘[[삼성동 IPARK]]’, ‘[[수원 IPARK CITY]]’, ‘[[해운대 IPARK]]’ 등이 있다. [[주택사업]] 뿐 아니라 [[도시개발사업]]과 [[건축]], [[토목]], [[플랜트]], [[SOC개발사업]] 등 다양한 건설 분야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2017년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적 경험을 제공할 것을 목표로 ‘[[풍요로운 삶과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는 그룹 철학 선포했다. 현대산업개발은 2018년 5월 투자회사인 HDC와 사업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로 분할하고 정몽규 회장은 HDC 회장으로 취임했다. HDC는 자회사 관리와 부동산 임대사업 등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에 집중하고, HDC현대산업개발은 사업집중 회사로 주택, 건축, 인프라 부문에서 전문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 정몽근 . . . . 1회 일치
         * 1968.03 ~ 1973.12 [[현대건설]] 근무
  • 정해창(정무직공무원) . . . . 1회 일치
         고등고시(제10회) 사법과 및 행정과에 합격하여 1962년부터 [[검사(법조인)|검사]]로 근무하였다. 1982년부터 1985년까지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 [[차관]]을, 1985년부터 1986년까지 [[사법연수원]] [[원장]] 등을 지냈다. 1987년 5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수습 차원에서 [[김성기(1935)|김성기]] [[대한민국 법무부|법무부]][[법무부 장관|장관]]이 경질되자 후임 [[장관]]으로 임명되어 1988년 12월까지 역임하였다.
  • 차엽 . . . . 1회 일치
         * [[수원대학교]] 연극영화학부 학사
  • 차희식 . . . . 1회 일치
         차희식은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태어나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에서 성장하였다. [[장안면 (화성시)|장안면]]은 동리마다 서당이 있어 책 읽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교육과 문화의 수준이 높은 곳이었다. 또한 일찍이 [[동학]]과 [[기독교]]가 전파되어 민족독립의식이 강한 지역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민족주의적 의식을 함양하며 성장한 선생은 어릴 적부터 성격이 활발하고 사교술이 좋고 힘이 장사여서 여러 사람을 인솔하는 자질이 뛰어났고, 3·1운동 당시에는 장년층으로서 이 지역의 젊은이들을 통솔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 채동욱 . . . . 1회 일치
         14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1988년]] 검사로 임용되었고 검사장을 거쳐 [[2013년]] 4월 제39대 [[대한민국의 검찰총장|검찰총장]]의 자리에 올랐다. '특수통'으로, 검찰 조직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전면에 나서서 역할을 함에 후배 검사들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받았다.<ref>김요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5&aid=0000262465 채동욱 총장 퇴임…"유전자 검사 후 강력 조치"]. SBS. 2013년 9월 30일.</ref>
  • 청도군 . . . . 1회 일치
         청도로 향하는 [[고속버스]] 노선은 전무하며 [[시외버스]] 노선은 있긴 하지만 타 지방에 비하면 그야말로 안습 그 자체. [[대구부산고속도로]]가 개통되었음에도 [[철도]]가 강세인 지역이다. 그러다가 2015년 1월(!)에 드디어 [[동서울터미널|동서울]]행 시외버스가 개통되었다. 1일 3회 운행하며, 경산, 시지를 경유한다. 사실 동서울행도 경산발이 청도로 연장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보기 드문 '''[[철도]] 초강세 지역'''이다. [[경부선]] 철도가 사실상 시외 교통망의 대부분을 책임지며, [[청도역]] 앞은 항상 이용객으로 북적거린다. 여기에 관광객과 귀성객들이 몰린다면 좁은 역사는 그야말로 카오스가 된다. 이외에 북대구, 노포동, 마산, 수원 등 여러 교통 요충지는 '''철도가 너무 커버를 잘 해주는 나머지 없다.(...)'''
  • 최단비 . . . . 1회 일치
         * [[사법연수원]] 36기 수료
  • 최상열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14기를 수료했다. 1988년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에 임용되어 1994년 부산고등법원 판사, 1997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하다가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2005년에 부장판사가 되어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 서울고등법원을 거쳤다. 2014년 2월에는 제17대 울산지방법원장과 제19대 울산광역시 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되어 2년간 역임한 이후 2016년에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판장을 맡았으나 2018년 2월에 제36대 광주고등법원장에 임명되었다.
  • 최우제 . . . . 1회 일치
         * 힐스테이트
  • 최원권 . . . . 1회 일치
         |클럽=[[FC 서울|안양 LG 치타스 / FC 서울]] <br />→ [[광주 상무 축구단|광주 상무]] (군 복무)<br /> [[제주 유나이티드]] <br />→ [[대구 FC]] (임대) <br />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경주 한수원]] <br /> [[대구 FC]]
  • 최채흥 . . . . 1회 일치
         10월 6일 수원에서 열린 KT와의 경기에서는 선발 [[아델만]]이 선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4회 1사 이후 강판당하면서, 추격조로 또 등판했다. 기록은 1⅔이닝 동안 3탈삼진의 퍼펙트한 투구를 보여주었으며, 특히 5회에는 [[유한준]]과 [[박경수]]를 상대로 삼진을 뽑아내면서 투구폼 교정 후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연이어 보여주고 있다.
  • 최호중 (배우) . . . . 1회 일치
         * 수원대학교 연극영화학과
  • 토탈워: 쇼군 2/건물 . . . . 1회 일치
         >세금 징수원이 놓친 것은 다른 이의 이득이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클래식 . . . . 1회 일치
         >세금 징수원이 가지고 있는 서버는 일확천금을 얻기에는 너무 무겁지. 컴퓨터를 통해 나에게 연결시켜주면 데이터를 전송시킬 수 있어. 우리가 진지하다는 걸 보여주자고.
  • 하쿠다 켄 . . . . 1회 일치
         [[분류: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수원 백씨]]
  • 한규복 (1881년) . . . . 1회 일치
         [[1939년]] [[6월 4일]] [[중추원]] 참의로 재선되었다. [[8월 5일]]에는 [[국민정신총동원연맹]] 주최로 전국 순회강연을 할 때, 순회강사가 되어 국민 저축 장려를 목적으로 '백억 저축 생활 쇄신'이라는 주제로 전국 순회강연을 다녔다. [[9월 26일]]에는 각지의 노무자와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사회조사위원회]] 위원에 피임되었다.<ref>"勞務者와 細窮民을 來月中에 綜合調査", 동아일보 1939년 09월 26일자 2면, 사회면</ref> 그해 [[9월 30일]] [[경성]]에서 자본금 백만원을 투자하여 [[조선공영회사]](朝鮮工營會社)를 창립하고 대표이사 사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5일]] [[조선중앙임금위원회]] 임시위원으로 선임되면서 사퇴했다. [[12월 22일]] [[세제조사위원회]] 위원에 선임되었다. [[1939년]]부터 그는 [[경성부]], [[충주군]], [[함양군]], [[수원군]], [[용인군]], [[양주군]] 등을 다니며 저축을 할 것을 주장하였다.
  • 현재현 . . . . 1회 일치
         * 1971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97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민사법 석사학위를 받았다.
  • 현진건 . . . . 1회 일치
         이들 형제는 현진건이 5촌 당숙 '''현보운'''([[1875년]]~[[1919년]])의 양자로 [[입양]]되어 들어간 뒤 법적으로는 친형제에서 6촌 형제로 바뀌었다. 관립 일어학교 출신의 보운은 고종 33년인 [[건양]](建陽) 원년([[1896년]]) 8월 3일에 외국어학교의 교관(敎官)이 되었고, 광무 3년([[1899년]])에는 궁내부 번역관, 광무 4년([[1900년]]) 12월 24일에는 예식원 참리관으로 임명되어 봉직하다가 [[러일전쟁]]이 일어난 광무 7년(1903년) 11월 11일에 주일공사관 이등참서관이 되었고, 광무 8년(1904년) 일본 보병대 수원(隨員)으로 일본으로부터 즈이호오 4등 훈장을 받기도 했다. 광무 9년(1905년)에는 [[병조|군부]] 군무국 포병과로 옮겨 정위가 되었다.
  • 황병기 . . . . 1회 일치
         1974년부터 2001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교수로 활동하면서 배출한 제자로 동국대학교 교수 윤소희, 단국대학교 교수 서원숙, 숙명여대 교수 김일륜, 이화여대 교수 곽은아, 서울대학교 교수 이지영, 서울대학교 강사 지애리, 목원대학교 겸임교수 이정자, 이화여대 강사 조윤정, 정순희, 대구예술대학 강사 이미경, 숙명여대 강사 이영신, 수원여대 강사 박지영 등이 있다. 이화여대 재직시 개인적으로 지도한 제자로는 준인간문화재 양승희, 이화여대 교수 문재숙, 서원대학교 교수 박현숙, 추계예술대학 교수 이효분, 전남대학교 교수 성애순 등이 있다.
  • 황병하 . . . . 1회 일치
         1962년 [[서울시]]에서 태어나 [[우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5회 사법시험 합격하여 15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였다. 군 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치고 판사에 임용되어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서울민사지방법원,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인천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에서 판사를 하였다. 대법원 재판연구원,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지원장을 거쳐 2004년 2월 정기인사에서 부장판사로 승진하였다. 2016년에 법원장으로 승진하였으나 [[대구지방법원]]과 [[서울행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고 평생 법관제에 따라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재판장으로서 재판을 하고 있다.<ref>[http://www.ksmnews.co.kr/default/index_view_page.php?idx=130901&part_idx=335]</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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